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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이 날씨시장으로 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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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을 강타해 루이뷔통 같은 명품업체가 초비상이 걸린 적이 있다. 세계 악어가죽 공급의 85%를 차지하는 루이지애나주 양식 악어 150만 마리가 거의 죽어 악어가죽 가격이 폭등했기 때문이다. 2만1000 달러(약 2400만원)짜리 루이뷔통 악어가죽 재킷은 생산이 중단됐고 살바토레 페라가모 악어구두 가격도 두 배가량 치솟아 큰 피해를 봤다. 이때 수익을 거둔 이도 있었으니 바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다. 카트리나에 놀란 플로리다 주정부는 워런 버핏과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하면 (버핏이) 40억 달러의 주정부 채권을 매입한다’는 헤지(위험 대비) 계약을 맺었다. 피해 복구 자금줄을 마련해 놓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듬해 허리케인은 잠잠했고 버핏은 헤지 계약의 대가로 2억2000만 달러(약 2500억원)를 고스란히 챙겼다.

 『워런 버핏이 날씨시장으로 간 까닭은』이란 책에 소개된 일화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이상기후로 경제기상도가 급변하고 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104년 만의 가뭄과 연일 35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가 지속되는가 하면 난데없이 국지성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국내 산업계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던 얼마 전으로 돌아가 보자. 불황 속에서도 반짝특수를 누린 제품이 꽤 많았다. 한 대형마트의 여름장부를 들여다보면 에어컨은 진열상품까지 동나는 품귀현상을 빚으며 40% 매출 증가를 기록했고 대형 선풍기는 57%, 쿨매트는 100배 이상 판매가 늘었다. 열대야 속 ‘치맥(치킨과 맥주)’을 즐기려는 사람도 늘어 수입맥주가 59%, 치킨은 30% 껑충 뛰었다고 한다. 반면 지구촌 폭염과 가뭄의 여파로 밀·옥수수·대두 가격이 오르면서 이르면 올해 말 밥상물가가 들썩이는 애그플레이션을 경험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기업에 날씨는 이제 필수 체크포인트다. 상품마다 잘 팔리는 온도부터 따로 있다. 반소매셔츠는 섭씨 영상 18도부터 많이 팔리고 에어컨은 19도, 아이스크림은 22도부터라고 한다. 온도가 더 오르면 수박(26도), 방충제·물티슈(29도)가 제철을 만난다. 반대로 온도가 내려갈 때는 13도부터 뜨끈한 어묵이 잘 팔리고 스웨터(영하 4도), 오리털 파카(영하 8~10도) 순으로 판매가 늘어난다.

 이제 ‘비 오면 짚신장수 아들 걱정, 안 오면 우산장수 아들 걱정’ 식으로 앉아서 날씨만 걱정할 게 아니다. 날씨를 유가나 환율·금리처럼 중요한 경영변수로 인식해야 한다. 나아가 기상이변을 새로운 사업 기회로 활용해야 할 필요성도 엿보인다.

 기상선진국 미국은 기상시장 규모만 9조원이다. 1500억원에 불과한 국내 시장에 견줘 보면 어마어마하다. 1980년대부터 매년 평균 5%씩 꾸준히 성장하다가 카트리나로 수천 명의 피해가 발생한 이후에는 4.5배 수준까지 급팽창했다.

 기상산업은 일자리의 보고이기도 하다. 미국은 기상정보를 다루는 방송·신문 등을 비롯해 기상관측기기, 기상 컨설팅, 기상시스템 개발 등의 분야 4만여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폭우나 폭염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해 주는 ‘날씨보험’이나 ‘날씨 파생상품’도 선보이고 있다. 기상이변 피해를 감정하는 ‘기상감정사’, 기상재해를 대비해 주는 ‘재해 컨설턴트’ 등 이색 직업도 생겨나고 있다.

 최근 우리 정부도 다양한 기상산업 육성정책을 내놓고 있다. 올해부터 기상정보를 활용해 피해에 대비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기업에는 ‘날씨경영 인증’을 해 주고 있다. 9월부터는 날씨(weather)와 내비게이션(navigation)을 합친 ‘웨비게이션’도 출시한다. 차량이 있는 지역의 기온과 습도, 안개, 도로 결빙 같은 세세한 기상정보를 제공해 교통사고를 방지한다는 것이다.

 ‘날씨가 세계경제의 80%를 좌우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날씨가 기업활동과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적벽대전에서 제갈량이 그랬던 것처럼 꿇어앉아 기도만 하다간 기상이변의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뿐이다. 무쌍한 기상환경 변화 속에 기업경영에 미치는 치명적 위협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할 때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