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카피캣 가렸다” 삼성 “소비자 손실이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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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미국에서 진행된 애플과의 특허 침해 재판 1심 배심원 평결에서 완패했다. 9명의 남녀 배심원단은 삼성의 스마트폰 등 휴대용 기기들이 애플의 특허를 침해했다고 평결하고, 10억 달러가 넘는 배상액까지 제시했다. 미 법원이 배심원 평결을 따라 최종 판결하면 모바일 정보기술(IT) 시장에서 삼성의 입지는 급속히 약화될 수 있다. 승기를 잡은 애플은 다음 달 초 현지 법원에 삼성 제품들의 미국 내 판매금지 조치까지 요구할 계획이다. 삼성은 거액 배상에 판금 조치, 글로벌 위상 하락 등의 처지에 몰렸다.

미 캘리포니아주 연방 북부지방법원은 24일(현지시간) 오후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 1심 평결심에서 삼성의 스마트폰·태블릿PC 제품 대부분이 애플의 아이폰·아이패드의 디자인과 기술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축소하는 ‘멀티 터치 줌’ 등 애플이 주장한 특허침해 7건 중 6건을 받아들였다. 배심원단은 삼성에 10억4934만3540달러(약 1조191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지금까지 글로벌 특허소송 사상 최대 배상금액은 15억2000만 달러다. 2007년 미 샌디에이고 연방법원이 MS에 알카텔루슨트의 MP3 특허 2건을 침해했다며 내린 배상액이다. 반면 삼성이 제소한 애플의 통신기술 특허침해 5건은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루시 고 판사는 이르면 한 달 안에 양측 변호인들의 이의제기를 거쳐 최종 판결을 내린다.애플은 평결 결과에 대해 ‘도둑질은 옳지 않다(Stealing isn’t right)는 법원의 메시지’라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IT 전문지인 더 버지에 따르면 이날 삼성과 애플 변호인단은 루시 고 판사와 판매금지명령(Injunction) 관련 공판 일정을 다음 달 20일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는 워싱턴DC의 미연방순회특허항소법원에 제소할 뜻까지 비쳤다. 삼성전자는 성명을 통해 ‘미 소비자들의 선택 기회와 혁신 기회를 줄이게 될 것이다. 미국에 제품을 차질 없이 공급할 수 있도록 모든 법적 조치를 다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평결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대우증권의 송종호 테크팀장은 “애플의 우세를 점쳤지만 완승할 거라는 예상은 못했다”고 놀라움을 표했다. 그는 “삼성의 통신특허가 일부 인정되고, 배상액도 5억 달러 근방이 아닐까 예상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일방적인 판단이 내려진 데 대해 전문가들은 미 배심원 제도의 속성을 든다. 제너럴 페이턴트의 알렉스 폴노랙 최고경영자는 “배심원들은 ‘좋은 편(good guy)’과 ‘나쁜 편(bad guy)’을 가린다.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모방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으면 웬만한 쟁점에선 애플의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설명이다. ‘홈 어드밴티지(안방의 이점)’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앞서 24일 한국에서 나온 특허침해 판결에선 삼성이 승소했다.

이번 평결은 삼성에 적잖은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카피캣(Copycat, 모방꾼)’이라는 오명 때문이다. 이번 소송 현안은 아니지만 최신 제품 ‘갤럭시3’ 스마트폰 등의 미국 내 판매에도 차질이 올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을 포함해 영국·독일·프랑스 등 세계 주요 9개국에서 진행 중인 삼성과 애플의 50여 건 특허소송에도 영향을 줄지 모른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 32.6%, 애플 16.9%로 삼성은 2배 가까운 격차로 선두를 지키고 있다. 이번 평결로 삼성 스마트폰의 고공행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이런 분위기는 이날 주가에도 반영됐다. 한국 코스피의 삼성전자 주가는 전날보다 떨어진 127만5000원에, 미 나스닥의 애플 주가는 전날보다 오른 663.22달러에 각각 장을 마감했다.
애플은 삼성을 넘어 구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쓰는 제조사에도 특허소송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멀티 터치 줌’ 등 스마트폰 필수 기능들이 애플의 배타적 특허로 광범위하게 인정됐기 때문이다. 삼성 스마트폰을 간판으로 내세운 안드로이드폰 진영은 비상이 걸렸다. 지난 2분기에 세계에서 판매된 스마트폰 10대 중 7대가 안드로이드폰이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미 국제무역위원회(ITC)는 구글이 인수한 모토로라모빌리티가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침해 소송에서 “특허 침해가 아니다”고 애플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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