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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통화 목록 0, 문자 메시지 0 … 그는 혼자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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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울산시 북구 북산동에서 동네 수퍼 여주인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 이모씨가 23일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위 사진). 아래 사진은 21일 오후 9시30분 이씨가 수퍼에서 여주인을 흉기로 찌르고 있는 장면(왼쪽)과 이씨가 범행 당시 들고 있던 각종 흉기와 가방. [사진 울산중부경찰서] [뉴시스]

가족과 헤어져 8년째 혼자 살다 일자리마저 잃은 청년이 선택한 것은 ‘은둔’의 삶이었다. 사회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키고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하루 종일 TV를 보는 게 일과의 전부였다. 그의 방에서 경찰이 찾아낸 폴더형 휴대전화의 통화 목록과 문자 메시지 함은 비어 있었다. 21일 오후 9시30분 울산시 중구 북산동에서 수퍼마켓 여주인을 흉기로 찔러 중상을 입힌(본지 8월 23일자 16면) 이모(27)씨의 삶은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였다.

 그는 퇴로 없는 ‘사회적 루저(실패자)’이기도 했다. 경찰과 동네 주민들에 따르면 이씨의 부모는 그가 중학교 3학년 때쯤 이혼했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형제인 누나(29)도 이때 집을 떠났다. 이후 그는 한동안 어머니와 단둘이 생활하다 8년 전 어머니가 거처를 옮긴 뒤로는 줄곧 혼자 살아야 했다. 고교 진학을 포기하는 바람에 10대 시절 어울려 지낼 친구도 없었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20세 이후 대형 마트와 자동차 부품 업체 등에서 3∼4개월씩 일하다 그만두기를 되풀이하다 그마저 3년 전부터 그만뒀다. 그는 어머니가 준 용돈(매달 20만원)으로 근근이 살아왔다. 그의 은둔처는 울산 중구에 있는 어머니 소유의 방 2칸짜리 단독 주택(60여㎡)이었다. 식사는 과자와 라면으로 주로 해결했다. 한번에 동네 수퍼에서 2만∼5만원어치의 과자를 사다 방에 쌓아 두고 조금씩 먹었다. 30인치짜리 TV를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 가끔씩 용돈을 주러 들르는 어머니에게 신경질을 내며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는 소심하고 신경질적인 성격 때문에 한 직장에서 오래 일을 못 하고 번번이 그만뒀다”고 말했다. 외톨이 생활을 해 오던 그는 21일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오후 9시30분, 길이 11㎝의 주방용 칼과 커터칼 7개, 망치, 날이 예리한 드라이버를 가방에 넣고 동네 수퍼로 향했다. 그가 과자를 사기 위해 유일하게 ‘외출’을 하던 곳이었다. 계산대에는 낯이 익은 주인 부부가 있었다. 그는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흉기를 휘둘렀다.

 이씨는 경찰에서 “망치와 드라이버는 문이 잠겼을 경우 부수기 위해 가지고 나왔다”고 진술했다. 그는 명확한 범행 동기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의 집 앞에서 만난 한 주민(55)은 “ ‘묻지마’ 범죄 때문에 가족이 파괴되고 서민이 불안해지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인 수퍼 여주인의 남편(55)은 “정신적으로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왜 그 청년이 아내를 찔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울산대 경찰학과 이창한(43) 교수는 “이씨는 사회적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전형적인 은둔형 외톨이의 모습”이라며 “직업도 없고 사회와 단절돼 있었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적개심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울산 중부경찰서는 23일 이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울산=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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