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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한국어 공연 ‘레미제라블’의 세 가지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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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빅토르 위고 원작의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캐머런 매킨토시 제작, 알랭 부브리 작사, 클로드 미셸 숀버그 작곡으로 1985년 초연됐다. 27년간 43개국 350개 도시에서 6000만명 이상이 관람했다. [사진 캐서린 애쉬모어]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이른바 세계 4대 뮤지컬(캣츠,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 중 유일하게 한국어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던 작품이다. 그 ‘레미제라블’ 한국어 버전이 11월부터 무대에 오른다.

 ‘레미제라블’은 1985년 런던에서 초연됐다. 이후 전세계 43개국 350개 도시에서 공연해왔다. 초연 27년 만의 한국어 공식 라이선스 공연답게 그간 국내에서 보기 힘들었던 세 가지 실험이 시도되고 있다.

 ◆오디션, 그리고 또 오디션

정성화

 “상반기 내내 레미제라블 오디션 봤어요. 평생 부를 노래, 이 참에 다 한 거죠.” 자베르 경감 역에 캐스팅된 배우 문종원의 말이다.

 오디션은 1월 스타트를 끊었다. 2000여 명의 배우가 몰렸다. 최근 10년간 한번도 오디션을 볼 필요가 없던, 국내 최정상급 뮤지컬 배우들도 비밀리에 응했다.

과정은 끈질겼다. 어떤 기준점을 정해 놓고, 그에 부합해야 뽑았다. 없으면 있을 때까지 찾았다. 등장인물 중 코제트의 경우, ▶10대 후반의 외모 ▶발랄한 이미지 ▶고음이 편안하게 올라가는 소프라노가 최소한의 자격이었다. 1차 서류, 2차 자유곡 심사에 이어 3차 배역 오디션에 500여 명이 응했다.

 이후 한번 오디션이 있을 때마다 절반씩 탈락시켜 나갔고, 7차에 가서 3명으로 압축됐다. 하지만 그 누구도 국내·외 크리에이티브팀을 다 만족시키지 못했다. 설왕설래만 이어졌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했다. 탈락자중에 혹시 대어를 놓친 건 아닌지, 기성 배우 중에 적합한 이가 있는지, 각 대학 뮤지컬 학과 학생 중에 숨겨진 보석이 없는지 수소문했다. 재공고를 냈고 200여명이 또 응했다.

 다시 3차에 걸친 오디션이 진행됐다. 7개월간 총 10번에 걸친 시험 끝에 캐스팅된 이는, 중도 탈락했던 이지수(19)씨. 갓 대학에 입학한, ‘레미제라블’이 데뷔작인 진짜 풋내기였다. 그는 “오디션 한번 할 때마다 실력이 쑥쑥 늘었다”라고 말했다. 최용수 국내 협력 연출은 “무명을 스타로 만드는 게 ‘레미제라블’”이라고 설명했다.

 ◆세종문화회관도 안 된다

 11월 ‘레미제라블’이 오르는 무대는 경기도 용인시 포은아트홀. 신생 극장이다. 이름을 처음 알리는 극장에서 ‘레미제라블’ 개막 공연이 열리는 건 뜻밖이다.

 제작사로선 트라우마가 있었다. 당초 ‘레미제라블’ 한국어 공연은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릴 계획이었다. 오디션도 거의 다 진행됐다. 하지만 개막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영국 측에서 “극장 크기와 작품이 맞지 않는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포기해야 했다.

 이번엔 처음부터 “유명세 필요 없다. 최적의 공연장 찾겠다”라며 발품을 팔았다. 그러다 올 11월 용인시 죽전역 앞에 개관하는 1200석 규모의 포은아트홀을 발견한 것이다. “같이 공연하자”라는 제안에 오히려 극장 측이 어리둥절해 했다. 7주간의 연습실 사용, 3주간의 리허설 등 극장측도 적극 협력했다. 내실을 다지는 최적의 조건인 셈이다.

 ◆장발장 역에는 정성화

 용인에서 출발한 ‘레미제라블’은 대구·부산을 거쳐 내년 9월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마무리된다. 10개월의 적지 않은 기간이지만 각 배역은 배우 한 명이 소화한다. 원캐스트인 거다. 주인공 장발장에는 정성화가 낙점됐다. 한달 남짓 공연해도 더블·트리플은 물론, 쿼드러플(4명의 배우가 한 배역을 번갈아 가며 공연하는 것)이 만연한 국내 뮤지컬계와는 전혀 다른 행보다.

 제작사 정명근 대표는 “특별한 게 아니다. 그저 기본에 충실하고 싶은 것”이라고 단언했다. “최적의 배우 한 명이 책임져야 완성도는 더욱 높아진다. 이름값이 아닌 실력을, 스타가 아닌 배우를 우린 원했고 뽑았다”고 강조했다. 결연함마저 엿보이는 제작과정, ‘레미제라블’의 성공 여부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새로운 척도가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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