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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도이그 미술 작품서 화장품 사업 영감 얻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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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란 화장품만도 못합니다. 화장품은 국민에게 작은 행복감이라도 주거든요. 얼마 전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런 말을 건넸더니 화들짝 놀라더군요.”

프랑스의 세계적 화장품 브랜드인 시슬리(Sisley)의 공동창업자 이자벨 도르나노(75·사진) 부회장의 말이다. 이자벨 부회장은 1976년 남편인 위베르 도르나노(86) 회장과 함께 천연식물 추출물을 원료로 하는 시슬리 화장품을 창업했다. 파리의 에펠탑에서 멀지 않은 센 강변 저택에 들어서자 회화·조각 등 다양한 예술품으로 빽빽해 박물관 같은 분위기였다. 위베르 회장은 다른 일정으로 인터뷰에 함께하지 못했다.

-마네의 작품처럼 눈에 익은 그림에서부터 잘 모르는 신인 작가의 그림까지 다양하게 보유하고 계신데.
“나는 예술품을 딱 보고 좋다는 감정이 생기면 산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면서 사는 진정한 의미의 예술품 투자가나 수집가가 아니다. 소유 목적이 아니라 그냥 작품이 좋아서, 보고 즐기기 위해 수집한다. 젊은 무명 작가의 재능을 아끼고 도와주는 후원의 뜻으로 사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수집한 작품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다. 요즘 벼락부자들은 주식보다 예술품을 많이 산다. 인터넷상에서 돈을 갑자기 번 일부 젊은 부호가 예술품을 많이 구입한다. 그들은 돈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수집한 작품 중 피터 도이그의 그림에서 화장품 사업의 영감을 많이 얻는다. 스코틀랜드 출생인 그는 핑크빛으로 그린 구상화를 좋아한다. 자기방식대로 표현하는 용기 있는 작가다.”

-요즘 유럽 경제가 어려워 고급 화장품 업체로서 판매에 어려움이 있을 텐데.
“믿기 어렵겠지만 유럽 지역에서 화장품 판매가 오히려 더 늘었다. 화장품도 패션 제품이지만 의류 등 다른 것들과 성격이 조금 다르다. 널리 알려진 얘기지만 미국 증권거래소 자료를 보면 경기침체로 주식거래가 위축될수록 화장품 판매가 늘어난다고 한다. 경제가 어려워 다들 힘들 때 화장품이 기분을 밝게 해줄 수 있다는 증거 아닌가. 데스탱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정치인들이 화장품 회사를 잘만 육성하면 국민 행복도 증진된다고 조언해줬다. 정치인들은 이런 간단한 사실조차 모른다. 여유가 많지 않은 사람도 우리 매장에 들러 립스틱 하나 사가면서 작은 행복감을 느낀다. 암투병 한다는 여성이 어느 날 파리한 얼굴로 매장에 들러 화장품을 사간 뒤 이튿날 행복한 얼굴로 다시 왔다. 화장품 장사는 정치보다 더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장품 사업의 경쟁이 치열하다. 미래를 어떻게 보나.
“고령화는 화장품 업계에는 오히려 큰 희망이다. 수명이 길어지는 건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된다. ‘젊게 보이자’는 앤티에이징 화장품에 관심이 쏠린다. 우리 회사도 이와 관련한 제품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피부 노화를 획기적으로 막아주는 ‘글로벌 퍼펙트 포어’(작은 사진) 신제품을 다음 달에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동시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렌즈콩·자바티·은버드나무 등의 천연추출물로 만들었다. 한국의 인삼 추출물에도 관심이 많아 이미 화장품 원료로 많이 쓰고 있다.”

-어떻게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었나.
“방 3개, 15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다. 화장품 사업은 처음엔 작게 시작하는 게 좋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장품 회사의 경우 대기업이나 재력가가 뛰어들어 성공시킨 사례가 거의 없다. 화장품 사업은 창조적인 사람이라야 성공한다. ‘의지·끈기·비전’으로 브랜드를 만들어 가야 한다. 아들 필리프 사장은 상속받은 2세 사업가라기보다 동업자다. 26년 넘게 함께 사업을 하고 있다. 또 우리 회사의 가치관은 가정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동창업자인 남편은 프랑스의 국가 발전에, 나는 폴란드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남편 도르나노가(家)는 나폴레옹의 6촌 필리프 앙투안 도르나노를 비롯해 3명의 육군 원수를 배출했다. 나도 폴란드 왕족 출신이다. 나라의 발전은 가정에서 출발한다. 가정은 조금만 신경을 쓰면 눈에 띄게 발전할 수 있다. 가정은 때로는 엄격해야 한다. 그래야 자식들에게 정의감이 생긴다.”

-한국 여성은 어떻게 생각하나.
“세계에서 미를 가장 잘 아는 여성들이다. 피가로 지에서 세계 주요 도시를 조사한 적이 있다. 그 자료를 보면 한국 여성들이 ‘뷰티’에 관심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여성들은 멋스럽지만 화장을 직관적으로 혼자 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여성들은 ‘케어’를 배우고 제품에 대해 까다롭게 따진다. 미국 여성들은 이것저것 바르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화장품을 만들어 보라고 했다. 그렇게 미국 시장을 겨냥해 나온 것이 ‘필수불가결한 제품’이라는 뜻을 담은 ‘에센셜’ 제품이다.

나는 ‘젊음이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유명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비율의 문제다. 매력과 우아함이 함께해야 한다. 나이가 들면 매력이 아름다움의 근원이다. 아름다워지길 원하는 이들은 매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젊어서 아름답다고 하는 사람들은 매우 방어적이다. 여러 남자의 시선이 집중돼 그렇게 되는 건 당연하다. 아름다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 여성들은 스스로 관리를 잘한다.

기본적으로 피부관리를 잘하려면 ▶술과 담배를 멀리하고 ▶피부 클렌징을 열심히 하며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 나이 들어 매력을 유지하려면 특히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여러 사람과 만나는 일을 즐겨야 한다. 더불어 있는 것을 즐겨라. 나이 먹어서는 이게 ‘미(美)’의 원천이다. 스포츠인이건 정치인이건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만나야 한다. 인간은 교류의 동물이다. 사람들과 만나 뭐든지 들어줘야 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수집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미술·음악·시에는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다. 대화의 좋은 소재가 된다.”

파리=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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