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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톨스토이 후손의 격년 모임 ‘스예즈다 세미’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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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남쪽 툴라주 주도의 크리피브나 지역에선 8월 18일 구식 전쟁 장면이 연출됐다.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영지인 야스나야 폴랴나가 바로 인근에 있다. 200년 전 1812년 바로 이날 프랑스의 러시아 침공에 대항해 툴라의 의용병이 처음 모인 것을 재연한 것이다. 리얼한 재연을 위해 창과 칼, 그리고 구식 소총이 등장했다.

‘80여 명 톨스토이들’도 참여했다. 러시아 톨스토이뿐 아니라 이탈리아·프랑스·스웨덴·체코·덴마크·영국·캐나다·미국 톨스토이도 있었으며 나이도 어린이에서 70세까지 다양했다. 7대에 걸쳐 세계에 흩어져 사는 톨스토이의 직계 후손들이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는 톨스토이의 대작 『전쟁과 평화』의 주제인 1812년 전쟁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외대 러시아어학과 김현택 교수는 “톨스토이 소설엔 등장하지 않지만 나폴레옹의 1812년 전쟁 때 크리피브나에서 용병이 조직돼 지역을 지키다 제1 기병대로 파리에 진주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전쟁과 평화』의 주무대인 보로지노는 모스크바 서부 120㎞, 코로차 강변에 있다.

1910년 톨스토이가 사망한 뒤 102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는 7대에 걸쳐 377명의 후손이 태어나고 죽었다(톨스토이 박물관의 웹사이트 기준). 1917년 혁명은 톨스토이의 자식 한 명만 빼고 모두를 러시아에서 몰아냈다. 그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20여 개 나라에서 힘겹게 타향살이를 이어갔다. 냉전의 한기에 서로 만날 엄두도 못 냈고 ‘위대한 할아버지’를 기리려 야스나야 폴랴나까지 오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옛 소련이 붕괴해도 움츠러든 마음은 펴지지 않았다. 그러다 톨스토이 박물관 관장인 블라디미르 톨스토이(50)가 큰 구상을 했다. 톨스토이 5대손으로, 언론인을 거쳐 1994년 8월부터 박물관 관장을 맡고 있던 그는 ‘가문의 흔들림’을 걱정했다.

그는 “위 세대는 서로 알고 지냈고 왕래도 있었지만 이젠 점차 사라져간다. 4대손도 가끔 사망하는 지경이다. 그런데 남은 세대들이 서로 유대를 갖고 잘 지내려면 함께 같이 지내는 경험과 시간이 필요해 상봉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우리에겐 야스나야 폴랴나라는 구심점이 있다”며 “우린 형식적 가족이 아닌 영혼 속에 톨스토이가 살아 있는 가문을 만들고 싶다”고 러시아 언론에 말했다.

그렇게 격년제로 2000년부터 상봉 행사가 시작됐다. 이름은 ‘스예즈다 세미’. 가족 상봉이란 뜻이다. 올해 8월 16~21일 행사엔 85명이 왔다. 2010년엔 8월엔 130명 정도가 왔다. 2012년 톨스토이 박물관의 가문 등록자 375명을 기준으로 생존자가 311명이므로 40% 넘게 왔다는 얘기다. 대성황이다.

모임마다 컨셉트도 있다. 올해는 ‘위대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결혼 150주년 기념’이다. 톨스토이 부부는 1862년 9월 24일(구력)에 결혼했다. ‘대(大)할아버지’ 추모 행사로 톨스토이의 작품 『안나 카레리나』를 영화로 만든 세르게이 소로비예프 감독도 초대됐다. 『톨스토이:천국으로부터의 탈출』의 저자인 페벨 바신스키 초청 강연도 있다. 가족의 유대를 두텁게 하는 행사로 톨스토이의 여동생인 마리아 사진 전시와 그녀의 영지였던 피고로보 방문이 있다. 톨스토이는 피고로보를 자주 찾아 쉬면서 작품을 구상했다.

2010년 8월엔 톨스토이 서거 100주년에는 대문호의 최후를 영화화한 ‘마지막 정거장’이 상연됐다. 가출한 뒤 얼마 안 돼 1910년 그가 숨진 곳이 아스타포브 역이다. 당초 배우 앤서니 홉킨스와 메릴 스트리프가 톨스토이 부부로 설정됐었는데 얘기가 잘 안 돼 한 급 낮은 크리스토퍼 프라머와 헬렌 미렌이 주연했다. 러시아 기록영화 ‘살아있는 천재’도 관람했다.

2010년엔 체첸의 스트로그라도브스키 시에 있는 톨스토이 박물관장도 왔다. 제국의 장교인 형 니콜라이를 따라 1851년 캅카스로 간 톨스토이는 체첸과 다게스탄의 캅카스 마을에서 2년6개월 군인으로 살며 집필도 했다. 그때 쓴 ‘어린 시절’ 과 ‘소년 시절’의 출판으로 그는 단숨에 유명 작가로 올라섰다. 그는 또 나중에 캅카스를 무대로 한 중편 ‘하지 무라트’를 쓴다. 주인공 하지 무라트는 캅카스의 무슬림 족장으로 정복자 러시아와 저항하는 무슬림 사이에서 방황하다 전사하는 내용이다. 그해엔 다게스탄에서 직접 운반해온 30t 돌로 하지 무라트 기념비를 세웠다.

2008년은 톨스토이 탄생 180주년, 2002년엔 톨스토이-소피아의 140주년 결혼 기념 그리고 소설 ‘어린 시절’ 출판 108주년 기념이었다.
가벼운 추모 행사로는 첫날 ‘톨스토이 묘지 참배’가 있고 이어 영지와 가까운 툴라의 ‘추억의 장소’ 참관, 마지막 장소가 된 아스타포브역 방문 같은 게 있다. 톨스토이 박물관의 갈리나 알렉세예브나 박사는 “올해 행사는 16일 시작됐고 후손들은 추억의 장소를 돈 뒤 20일 다시 모여 톨스토이를 기릴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기리기’ 같은 의미 있는 행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푸틴 대통령의 교육 특별고문으로 임명된 블라디미르는 “우린 1주일간 대가족처럼 지낸다”고 말한다. 어린아이에서 70대 노인까지 후손들은 나이와 기호에 따라 잼 만들기, 풀 베기도 하고 ‘가족 전통 요리 비법’ 도 듣는다. 문제는 여러 나라에서 사는 데 따른 언어의 벽. 그래서 러시아어 코스를 만들어 기초라도 배우게 한다. ‘가문의 운동’인 배드민턴과 크리켓도 한다. 젊은 세대는 저녁에 임시 디스코텍을 가고 어른들은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산책도 한다.

안성규 CIS 순회특파원
이리나 코르군 한국외대 러시아 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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