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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서민에게 로또는 치명적 유혹이고 환각제이며 진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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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이번 달 생활이 너무 어려웠어요. 도저히 계산이 안 나왔죠.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샀는데….” 돈이 남아돌아서 복권을 사는 사람은 없다. 지난주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상 최대 당첨금의 주인공도 “돈이 없어서 로또를 샀다”고 현지 언론에 털어놓았다. 영국 잉글랜드 동부의 서퍽에서 음반가게를 하는 에이드리언 베이퍼드(41)와 질리언 베이퍼드(40·간호조무사) 부부는 두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 어렵게 사는 서민이다.

 지난 주말 베이퍼드 부부는 프랑스 국영 복권회사가 유럽 9개국에서 발매하는 로또식 복권인 ‘유로 밀리언(Euro Millions)’의 최종 당첨자가 됐다. 14회 연속 1등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최고 당첨금이 1억9000만 유로(약 2666억원)까지 치솟은 상태에서 ‘수퍼 잭팟’을 터뜨렸다. 베이퍼드 부부는 1억1653만분의 1의 확률을 뚫고 행운의 숫자 7개를 모두 맞혔다. 지난주 유로 밀리언 복권이 판매되는 유럽 주요 도시들마다 복권을 사려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뤘다고 한다. 유럽에 있었으면 나도 틀림없이 그 치명적 유혹에 굴복했을 것이다.

 솔직히 서민치고 복권 한 번 안 사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낱같은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참담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지금은 포기했지만 나도 몇 번 대박에 눈이 멀어 로또를 산 적이 있다. 수학적 확률로 따지면 어림도 없는 꿈인 줄 잘 알지만 매주 어김없이 1등 당첨자가, 그것도 여러 명씩 나오는 걸 보면서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지갑을 여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살림살이가 팍팍할수록 로또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럴수록 서민들의 지갑은 얇아진다. 로또의 역설이다.

 불황으로 더 많은 사람이 로또에 몰리면서 당첨률을 높이기 위한 온갖 아이디어가 속출하고 있다. 당첨번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들이 로또 회차별로 수십~수백 개의 예상 당첨번호를 찍어 신청자들에게 무료로 ‘분양’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 번호로 상위 등수에 당첨될 경우 분양해준 전문가에게 당첨금의 5~10%를 떼어준다는 것이다. 공동구매도 등장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예상 당첨번호군에 있는 로또를 대량구매해 당첨 확률을 높인 뒤 구매 시 투자한 비율대로 당첨금을 나눠 갖는 방식이다.

 로또를 사서 며칠이라도 지갑에 넣고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서민에게 복권은 일종의 환각제다. 잠시 고통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다. 복권판매대금의 절반을 당첨금으로 돌려준다지만 당첨된 적 없는 사람에겐 무의미한 숫자다. 나머지 절반도 좋은 일에 쓰인다고 하지만 피부에 안 와닿기는 마찬가지다. 복권기금으로 지금까지 쌓인 돈만 7400억원이 넘는다기에 더 허탈해진다. 어젯밤 꿈이 좋았는데 모처럼 나도 로또나 한번 다시 사볼까. 한여름 밤의 헛된 꿈이겠지만….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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