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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에서 꽃피는 새로운 문학들

중앙일보

입력

문학의 위기, 혹은 작가의 상실은 90년대 들면서 문학 내부에서 전개되어 온 가장 치열한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리얼리즘과 자유주의로 대변되었던 80년대가 막을 내릴 즈음 한국 문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터널을 지나며 기우뚱거렸는데, 그 흔들림은 곧 문학의 위기로 명명되었다. 적이 사라지고 동시에 이념이 탈색되자, 작가의 팽팽했던 활시위는 풀어지고 말았다. 정치권에서 문민과 국민의 정부, 세계화가 외쳐지는 동안 문학을 포함한 문화의 장에서는 ‘문화산업’ 논리가 ‘문화’ 논리를 제압하기 시작했다.

전통적 의미의 문화 장르와 그 위계는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문학만으로만 한정하자면 대중소설들이 출판 시장을 휩쓸기 시작했다. 아직 80년대의 여운을 어쩌지 못하던 작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들의 위치가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투사였고 사상가였으며, 또 지식인이었던 작가를 대중들이 거들떠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기성 작가가 개설한 사이버 문학관

대신 非제도권 작가들의 소설이 잇따라 슈퍼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본격 문학은 당황했다. 시청각 매체와 수시로 업그레이드 되는 뉴 멀티미디어를 타고 범람하는 대중문화에 문학이 포위되고 만 것이다. 매체 환경의 대지진을 통과하며 주눅 든 문학은 한 쪽에서는 대중에게로 돌아가자고 하며 신세대 문학과 영화 같은 소설의 깃발을 올렸고, 또 다른 쪽에서는 신비주의나 후일담, 혹은 대하 역사소설, 추리소설 등을 향해 저마다 길을 틀었다. 시는 소설보다 더욱 위축되었고, 문학비평은 ‘비평가 자신들도 읽지 않는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문학과 작가의 자리는 이처럼 급격하게 추락했다.

문학이 반드시 진지한 정신적 활동의 소산으로 창작된다거나 진정한 삶을 위한 사유 대상으로 수용된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90년대 들면서 문학은 창조-수용에서 생산-소비 차원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 문학사를 뒤적일 필요도 없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문학은 창조였고 작가는 창조자였다.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가였으며 동시에, 혹은 작가이기 이전에 역사와 현실에 적극 저항 개입하는 선각자, 투사, 사상가, 혁명가,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이 ‘문학’이 변화하고 있다. 문학과 인터넷의 만남. 오로지 작가의 상상력과 집필에 의해서 느리게 생산되는 근대적 양식인 문학과, 현대 첨단 테크놀로지의 상징인 인터넷이라는 정보양식은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키고 있을까. 우선 인터넷 공간을 뒤지다 보면 문학 관련 사이트가 적지 않다는 데 놀라게 된다.

계간 형태로 운영되는 ‘사이버 문학관’(http://www3.shinbiro.com/∼icerain/home. html)과, 시인 김정란씨가 지난 3월에 개설한 ‘허공의 집’(http://www.womanliterature.net), 시인 이진우씨가 개설한 시 전문 사이트 ‘시인학교’(http://www.gboat.co.kr/poetschool), ‘시인의 마을’(http://www.simaro.org)도 있다. 젊은 작가모임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 ‘문학’(http://www.literature.co.kr)이 있는가 하면, 번역가들이 만들어 놓은 문학 웹진 ‘오만과 편견’(http://www.opyun.rosy.net), 소설가 김영하씨처럼 작가 개인이 홈페이지를 연 경우도 있다. 이밖에 ‘The Sea’나 ‘엑스진’, ‘사이언’ 같은 문화 웹진들에서도 문학 관련 페이지를 따로 설정해 놓고 있다.

인터넷, PC통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젊은 작가들. 왼쪽부터 김정란, 김영하, 송경아씨. 사이트는 김정란씨가 운영하는 ''허공의 집''

낮은 문학적 수준·엉성한 운영은 문제

이들은 개설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다녀간 독자들이 몇 천명 정도밖에 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40만 회 이상의 조회 수를 자랑하는 ‘인기’ 혹은 ‘추천’ 사이트인 경우도 있다. 이런 문학 관련 사이트들은 애초 ‘인터넷상의 잡지’(웹진)임을 표방한 경우 외에도 대부분 그런 잡지적 성격을 공유하는 편이다.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 비평문처럼 고정된 지면도 있지만, 문단과 출판계 소식, 작가와 독자들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 같은 ‘움직이는 부분’을 열어놓고 사진이나 그림 등을 추가하는 등 기존 활자 매체인 ‘잡지’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이런 ‘잡지적인’ 문학 관련 사이트들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또 다른 유통 경로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우선 인터넷의 인디 문화적인 특성 때문이다. 누구나 문학 공간을 열거나 그곳에 드나들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선 기성 문단이라는 까다롭고 번거로운 통로를 거칠 필요 없이 자유롭게 글을 써서 올릴 수 있다. 인터넷이나 각종 통신망은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작가가 될 수 있게 한다. 독자 역시 서점에 나가 책이나 잡지를 사서 읽는 대신 컴퓨터를 켜고 접속해 자기가 원하는 작가와 작품을 마음대로 읽고 평가한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는 소규모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쉽다. 현실에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참여하는 ‘문학회’대신, 인터넷에서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며 때로는 익명성까지 보장되는 훨씬 느슨하고 부담 없는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 누군가 인터넷에 문학 공간을 열어놓았다고 해서 ‘주인’ 행세를 할 수도, 그럴 이유도 없다. 가능하면 그 공간이 참여자들을 통해 자유롭게 굴러가고 확대-발전하는 게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활자매체인 잡지는 일정한 발행자와 필진 및 독자, 판매 부수의 전제 위에 유지될 수 있지만, 인터넷 공간에서는 그런 요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기존 문화 생산의 체제로부터 독립해 독자적인 생산과 유통방식을 갖는 경우를 ‘인디 문화’라고 칭한다면, 활자문학의 유통과 소비의 장(場) 자체를 가상 공간으로 옮겨버린 인터넷과 문학의 만남은 상당 부분 인디 문화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나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 분야에 견주어 문학의 인터넷 공간에 대한 반응은 더디고 소극적인 편이다. 인터넷 공간의 문학 관련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문학의 수준도 기존 활자 매체에 견주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로 개인이나 몇몇 사람이 아마추어적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지속이나 확대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인터넷이나 PC통신을 통한 문학의 새로운 소통방식의 가능성은 이미 젊은 문인들 사이에서 실험과 논의를 거치고 있다. 송경아, 김영하 등 통신 공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인정받아 기성 문단에 진입한 경우, 통신문학 가운데 이우혁의 ‘퇴마록’이나 이영직의 ‘드래곤 라자’처럼 활자매체로도 출간돼 상업성을 인정받은 경우도 등장했다.

많은 문인들은 ‘디지털’, ‘하이퍼’, ‘멀티’, ‘영상’ 같은 수식어들 앞에 위축된, 문학의 ‘암울한 미래’를 걱정하곤 한다. 하지만 인간의 정서에 반하는 문화예술의 한 장르로서 문학이 지닌 근본적인 힘과 인터넷이라는 소통 경로의 화합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인터넷 공간에 등장한 문학 관련 사이트들도 그런 점에서 겉으로 드러난 부분에 비해 가공할 ‘잠재력’ 쪽에 시선을 돌려야 할 듯하다.

민영기 웹진 ''더럽'' 편집장

자료제공 : i-Weekly(http://www.iweek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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