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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곡물 가격 고삐 잡기 … G20 칼 빼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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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말라비틀어진 옥수수 … 타들어가는 농심 반세기 만의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곡창지대가 타들어가고 있다. 미 아칸소주 리버밸리의 한 농장주가 말라비틀어진 옥수수 낟알을 살펴보고 있다. 옥수수 가격은 두 달 새 50% 가까이 급등했다. [AP=연합뉴스]

글로벌 곡물 가격 파동이 주요 20개국(G20)의 고민거리에 추가됐다. G20은 치솟는 곡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신속대응 포럼’을 가동하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3일 보도했다.

신속대응 포럼은 G20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공동 대처한 이후 비정상적인 국제시장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 구성한 실무 조직이다. 이번에 곡물 가격 파동이 심각해지면서 처음으로 가동된다. G20은 27일 콘퍼런스 콜을 갖고 9월 말이나 10월 초 회의를 갖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곡물가격 파동의 진앙지는 세계 최대의 곡물 수출국가인 미국이다. 1960년 이후 최악의 가뭄으로 미 곡창지대의 곡물이 심각하게 말라 가면서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이다. 곡물시장의 바로미터인 옥수수·밀·콩·귀리 가격은 지난 6월 이후 2개월 새 30~50%가량 폭등했다. 지난 5월 부셸(25.4㎏)당 5달러에 거래되던 옥수수 가격은 7월부터 급상승해 이달 들어 8달러를 돌파했다.

 G20 관계자는 “세계 식량시장이 아직 공황에 빠진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G20이 신속대응에 나선 것은 가격 급등에 따른 식량 수출 제한과 사재기 등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세계 식량시장은 이미 2007~2008년 위기를 경험했다. 곡물을 에너지원으로 전용하는 바이오 연료(에탄올) 산업이 붐을 일으키면서 곡물 가격이 급등해 당시 20여개국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올해는 최악의 가뭄이 발생하면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옥수수밭을 포기하는 농가도 속출하고 있다. 경작을 포기하는 미 농가의 옥수수밭 면적은 제주도 크기(1846㎢)의 20배에 달한다.

미 농무부는 “올해 수확량은 급감할 수밖에 없다”며 “옥수수 수확량이 전년 대비 13% 감소한 108억 부셸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농무부는 “(그 여파로) 내년에는 기록적인 가격 상승이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곡물 가격의 급등은 애그플레이션(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다. 옥수수 가격 상승은 사료와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네슬레·크래프트·타이슨 등 미 식품업체들은 원료 값 상승에 따른 완제품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밝힌 바 있다. 식량자급이 요원한 아프리카 국가를 비롯해 제3세계 국가들에 심각한 피해가 예상된다. 이는 세계 경제 회복세에도 적지 않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양계장이 많은 미 델라웨어와 메릴랜드 등의 주지사들은 옥수수 공급 부족을 이유로 백악관에 에탄올 생산의 중단 명령을 촉구했다. 바이오 연료 생산을 촉진해 온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대한 정책 변화 압박이다. 오바마는 사태가 심각해지자 13일(현지시간) 아이오와주의 옥수수농장을 방문해 곡물이 식량과 연료 중 어느 쪽에 더 가치가 있는지를 놓고 끝장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유엔은 G20 포럼을 통해 바이오 연료 의무생산 목표를 포기할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김동호 기자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 농산물 가격 상승이 일반 물가를 끌어올리는 현상을 말한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처음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곡물가격은 1980년대 이후 장기간 안정세를 지속하다 2006년 하반기부터 급등했고, 2007년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곡물가격의 상승 요인으로는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감소, 곡물을 이용한 대체연료 활성화, 투기자본의 유입, 식량의 자원화 등이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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