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후원 약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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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3호 34면

2008 베이징 올림픽 최고의 스타는 박태환·이용대·장미란이었다. 이번 런던 올림픽의 히어로는 아무래도 남자 체조의 양학선일 듯싶다. 금메달을 따낸 과정도 한 편의 드라마 같고, 금메달 수상 이후 스토리도 자못 감동적이다. 우선 금메달 자체에 군더더기가 없다. 우월한 기술과 압도적인 기량으로 일군 것이다. 이런저런 판정 시비도 개입할 틈이 없었다. 자기 이름을 딴 최고 난도의 기술로 2위군을 따돌리고 한국 체조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신동재 칼럼

금메달 이후 스토리도 눈물겹다. 부모님이 전북의 한 농촌 비닐하우스 가건물에서 기거하고, 양 선수 자신은 매월 나오는 대표선수 훈련수당을 부모님 생활비로 꼬박꼬박 송금했다. ‘금메달 포상금을 받게 되면 부모님께 아파트를 사 드리겠다’는 말도 했다. 가슴 뭉클한 효심이 아닐 수 없다. 양 선수의 이런 마음 씀씀이에 감동받아 구본무 LG 회장은 5억원의 격려금을 전달하기로 했다. 금메달 딴 아들에게 엄마가 “귀국하면 니가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줄까”라고 묻는 대목에선 코끝이 찡했다.

구본무 회장에 이어 한 건설사는 아파트 제공을 약속했고, 어느 라면 제조업체는 무한정으로 라면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지원 소식을 들으며 자꾸 임춘애 선수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임춘애는 1986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800m, 1500m, 3000m)에 오르며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소녀였다. 깡마른 무명의 17세 여고생이 육상 불모지 한국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금메달 세 개를 선사하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언론은 그를 ‘헝그리 정신’으로 묘사하며 눈물샘을 자극했다. ‘라면 먹고 달린 춘애야…’라는 어느 신문의 제목이 지금도 기억난다. “밥보다 라면을 더 많이 먹고 뛰었다. 우유 마시며 연습하는 친구가 부러웠다”는 말도 뒤따랐다. 가난 속에서도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아시아를 제패한 것이다.

하지만 “라면을 먹고 자랐다” “우유 마실 돈이 없었다” 등의 표현은 나중에 본인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임춘애는 당시 헝그리 정신의 대명사였다. 라면·우유 회사를 포함해 많은 음식료품 기업이 평생 후원을 약속했다.

그도 그럴 게 86년은 서울 올림픽을 두 해 앞둔 시점이라 스포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지대했다. 선수들이 따는 메달은 물론이고 기록 하나하나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

그러던 중 서울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평생 약속은 대부분 ‘두 달 약속’으로 끝났다. 세간의 관심이 멀어지자 슬그머니 기업 후원을 중단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육상인 사이에서는 “현찰 지원이 아니면 못 믿겠다”는 말들이 나올 정도였다. 구본무 회장의 5억원 지원 약속이야 순수함을 의심할 필요가 없겠지만 아파트와 라면은 국민 눈에 좀 다르게 비치는 것 같다. 홍보효과를 노린 앰부시 마케팅(공식 스폰서가 아니면서 스폰서처럼 보이게 하는 홍보 활동)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실제로 아파트를 제공하겠다는 건설업체는 본사와 계열사 홈피까지 다운될 정도로 누리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브랜드 노출과 이미지 개선 등을 통한 직간접 효과가 2억원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라면업체는 후원의 순수성을 의심받고 있다. 라면 상자를 양학선 선수의 부모가 사는 동네에 쌓아놓은 뒤 회사 관계자가 찍은 기념사진에도 비난이 폭주한다. 이 회사는 기업 규모에 비해 그간 스포츠 지원에 유난히 인색했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그 흔한 스포츠팀 하나 운영하고 있지 않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올림픽 금메달로 국위를 선양한 선수나 가족을 돕는 건 의도 여하를 떠나 권장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면 금메달 직후 반짝 관심이나 생색 내기 지원보다는 평소에 운동선수든 경기단체든 체계적으로 꾸준히 도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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