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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영의 독서 칼럼] '새역모'의 역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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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이번 선거에 우리 동네에서는 세 사람이 출마했대. 기민당 후보는 공약으로 교과서를 바꾸자고 했고, 사민당 후보는 학교 점심을 맛있게 하겠다고 했고, 공산당 후보는 수업 시간을 줄이자고 했대. "

1970년대 말 유럽의 어느 초등학교에 다니던 우리 애들이 사회 시간에 들은 얘기를 한참 신나게 늘어놓았다. 담임 선생님은 수녀였다.

뭐, 공산당이 어떻다고? 자식 교육이 저렇다가는 애비 장래가 무사하지 못할 터! 그러나 그야말로 걱정도 팔자였다. 귀국 후 서너 달 만에 바로 그 애들이

"공산당은 죽어도 땅에 묻으면 안되고, 지구 밖으로 던져버려야 한대" 라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급기야 바캉스를 바다로 가자고 졸랐는데, 이유인즉 간첩선을 신고해 상금을 타자는 것이었다.

***사과 말씀보다 본심이 중요

소년기 교육은 이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 청소년만이 아닌 일본 청소년한테도 똑같이 중요할 터이다.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가 또다시 터져나왔다.

그 '또다시' 가 얼마나 더 되풀이될는지, 말만 나와도 지긋지긋하다. 이럴 때마다 일본 지식인들의 논리와 주장이 듣고 싶었는데 마침 고모리 요우이치(小森陽一) 와 다카하시 데쓰야(高橋哲哉) 가 엮은 『내셔널 히스토리를 넘어서』(삼인, 2000) 가 눈에 띄었다.

솔직히 나는 "과거 35년 동안 조선을 강탈했던 일본의 죄를 깊이 반성합니다" 따위의 사과보다 오히려 "일본이 점령했기에 조선이 그나마 발전했던 거야" 라고 목청을 높이는 저들의 '본심' 을 접하고 싶었다. 당장 혈압은 오르겠지만 실은 그게 약이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사과 말씀을 도쿄재판 사관 또는 코민테른 사관의 산물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모두가 전후의 미.일 안보 체제가 강요한 억지의 '자학 사관' 이라는 것이다. 이에 맞서는 주장으로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이 내세우는 '자유주의 사관' 이 있다.

개인과 국가는 일체이고, 천황은 사회 통합의 상징이며, 과거사 추궁은 자학이라는 것이 이들의 기본 인식이다. 따라서 타민족 침략과 강탈에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아도, 전후의 전범 재판에서 최고 책임자 천황이 빠져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자학 사관을 단죄하는 자유주의 사관 논자들이 일본이 과거 타민족에 범한 죄를 교과서에서 삭제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주의 사관에조차 적대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자기와 자기 사회가 역사 속에서 범한 죄와 책임을 자각하고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에게는 자유를 논할 자격이 없기 때문" (1백26쪽) 이라는 비판은 어떻게 피할 도리가 없다. 자유주의 사관에 자유주의가 발붙일 틈이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보호주의(?) 가 들어선다. "한반도는 가만히 두면 러시아나 구미 열강의 각축장이 되고, 일본의 안전을 위협하며 일본을 향해 들이대어진 흉기였다…피해를 본 것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며, 반성해야 할 쪽은 일본이 아니라 조선이다.

일본은 식민지에 선정까지 베풀었으므로 오히려 감사를 받아야지 사죄할 이유는 없다" (2백67쪽) 는 따위의 망발은 하도 많이 들어서 도리어 '식상할' 지경이다. 이 '정당 방위' 궤변은 점차 이웃 사랑(!) 설교로 발전하는데 "조선이라는 국가를 멸망시키고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난폭함은 있었지만…거기에는 조선이나 중국과의 관련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자각이 있었다.

침략은 좋지 않은 것이지만, 거기는 연대감의 왜곡된 표현이라는 측면도 있다. 무관심으로 다른 사람을 내버려두는 것보다 어느 의미에서는 건전함조차 있다" (2백1쪽) 고 강변한다. 어허, 저런 저런.

가만히 놔두면 소련에 먹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고, 그래서 함께 살자는 연대감의 표현으로 행한 미국의 '건전한' 원폭 투하에 일본은 진정 감사할 용의가 있는가? 미국에 패한 것은 50년 전으로 그때는 아직 일본인이었으나, 미국에 '완전히 패한' 것은 50년 뒤 미국의 교육 정책이 일본의 민족주의를 파괴한 때라는 자조와 반발이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은 무엇인가?

일본 사회 일각에는 이 질문조차 자학 사관의 잔영으로 몹시 불편하겠지만, 우리한테 한.일 과거사 정리에 대한 자유주의 사관의 모멸은 이와 비교조차 안될 만큼 불쾌하다.

그래서 "생존 본능 때문에 침략 전쟁이라는 악을 행하였지만, 침략 전쟁말고는 선으로 가는 길이 열리지 않는다는 좌절된 내셔널리즘은 그 출발점에 담긴 자기 기만 때문에 점차 더 큰 기만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1백72쪽) 는 고백이 정직하게 들리는 것이다.

***저들의 희극과 우리의 비극

자유주의 사관은 일본의 번영을 시기하는 주적으로 먼저 외세를 설정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 동유럽의 체제 전환국과 러시아, 조선과 중국 등 과거 식민지 국가가 바로 그들이다.

그리고 외국의 침략 세력과 손잡은 '반일본적 일본인' 이 있다. 미국도 러시아도 중국도 한국도 모두 적이고, 내부에도 파멸을 바라는 적이 있으니 좌절한 일본 민족주의로서는 미상불 크게 초조할 수밖에 없다. 그 초조의 출구는 전전의 파시즘 광기이기 쉽다.

그래서 종래의 극우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붕괴 이후 '회개한' 좌파까지 끌어들여 일례로 "우리 일본 공산당은 일본을 진정 세계에 자랑할 만한 나라로 만들고 싶어서 애국의 입장에 섰다" (2백42쪽) 는 따위로 세기의 희극을 벌이는 것이다. 새역모의 역모(逆謀) 가 비극인 것은 바로 이런 희극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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