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대남 선수처럼 멋진 말 더 공들여 통역하게 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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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에서는 9개의 언어가 쓰이고 있다. 메인미디어센터와 주요 경기장에서 기자회견이 열리면 한국어 동시통역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여름 대회로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한국어 서비스가 시작됐고, 유럽에서 열리는 대회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연향(55) 통역사는 “런던에서는 한국어 통역 서비스가 없을 줄 알았는데 한국 스포츠가 힘이 있나 봐요. 메달을 많이 따고, 스토리도 많으니까 외국 기자들의 관심이 상당히 높아요”라고 설명했다.

 한국어가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러시아어·중국어·일본어에 이어 아홉 번째로 ‘올림픽 언어’가 됐다. 이씨를 비롯해 김인향(42)·정지수(39·이상 영어), 그리고 고은경(42·영어와 프랑스어)씨 등 네 명이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어를 통역하고 있다.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고용한 이들은 한국 선수의 말을 외신 기자에게 전하고, 반대로 영어나 프랑스어 질문을 한국 선수에게 통역한다.

 고씨는 지난 4일 양궁장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한국 취재진이 남자 개인전 금메달리스트 오진혁(31)에게 “기보배와 사귀느냐”라고 물은 것이다. 한국말인데도 잘못 들은 줄 알았단다. 고씨는 “사전정보가 전혀 없었고, 공식 기자회견에서 사적인 얘기가 나올 줄 몰랐어요. 외신기자들에게 잘못 전달할까 봐, 그래서 엉뚱한 기사가 나갈까 봐 마음 졸였는데, 오진혁 선수가 ‘좋은 사이가 맞다’고 말했어요. 정말 다행이었어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씨는 유도 90㎏ 송대남(33)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정씨는 “송대남 선수가 멋진 말을 했어요.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승자가 됐다고 해서 우쭐할 필요도, 패자가 됐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도 없다. 올림픽에 나온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우승할 수 있다’고 말했거든요. 그 뜻을 제대로 전하기 위해 아주 공들여서 통역을 했어요”라고 떠올렸다.

 이씨는 “예전에 우리 선수들 인터뷰를 통역하면 답답할 때가 많았습니다. 짧은 소감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우리가 대신 말을 만들어 준 적도 있었거든요. 지금 어린 선수들은 재기발랄하고, 노장 선수들은 깊이 있는 말을 해요. 오역하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라고 했다.

  선수들의 빛나는 메달과 스토리가 통역사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있다.

런던=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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