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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끓는 물가 … 장보기 무섭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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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8일 오후 서울 용산 이마트. 주부 박현자(50·여)씨는 신선식품 코너에서 상추나 시금치를 살펴보다 이내 발길을 돌렸다. 그는 “상추 한 줌에 2000원씩이나 한다. 차라리 안 먹고 말지 하는 생각에 사는 걸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든 아껴보려고 이 더운 날씨에 에어컨조차 안 트는데 전기요금에 기름값에 온갖 물가가 올라 서민들 살기가 점점 힘들다”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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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소나 과일, 햇반 같은 각종 식품류를 비롯한 장바구니 물가가 뛰고 있다. 올여름 이례적인 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푸른잎 채소값이 줄줄이 올랐다. 라면이나 참치·햇반·맥주 값이 일제히 인상된 데 이어 콜라·사이다·캔커피·두유 가격 인상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기료는 이미 올랐고 기름값도 급등하고 있다. 여기에 가뭄과 폭염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콩·밀·옥수수 3대 국제 곡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국제 곡물가는 연말쯤이면 국내 물가에도 반영돼 밀가루나 사료·두부 가격 인상을 부채질할 전망이다.

 우선 가뭄과 폭염이 계속되면서 상추와 시금치는 잎이 시들어 출하량이 크게 줄었다. 한 달 전보다 가격이 100% 이상 급등했다. 이마트에 따르면 8일 시금치는 4㎏에 2만5700원으로 한 달 전보다 118%, 상추는 100g에 2000원으로 100%가 뛰었다. 대파나 홍고추·깻잎도 가뭄과 폭염 탓에 폭우가 덮쳤던 지난해보다 가격이 올랐다. 이번 주말부터 출하가 본격화되는 고랭지 채소 가격 역시 꿈틀거리고 있다.

이마트 채소바이어 장희성 과장은 “고랭지 배추는 밤에 기온이 내려가야 속이 꽉 찬다”며 “하지만 요샌 열대야로 속이 타 출하량이 크게 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가을배추와 무 재배면적은 지난해보다 20%가량 줄었다. 9월 말인 추석과, 이후 김장철 물가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셈이다.

 그동안 정부의 물가 안정책에 눌려 있던 식품업계에서는 가격 인상 도미노 현상이 펼쳐지고 있다. CJ제일제당은 8일 햇반(9.4%)과 다시다(6.4%) 가격을 전격 인상했다.

롯데칠성음료도 펩시콜라와 칠성사이다, 게토레이 가격을 10일부터 7% 정도 올릴 방침이다. 롯데칠성 관계자는 “설탕·캔·페트, 인건비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상품 가격을 올리지 않고 배겨낼 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부터 가격을 올린 맥주·라면·참치 업계에 이어 전 업계로 가격 인상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그동안 식품업계는 원자재가가 올라도 정부 눈치를 보느라 가격을 못 올렸다”며 “더 이상 원가 부담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두더지게임처럼 너도나도 가격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올해 가뭄과 고온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는데, 그 피해가 연말쯤에는 고스란히 국내 식탁 물가로 옮겨질 전망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달 초 국제 밀·콩·옥수수 가격은 지난 연말보다 25~36%가량 급등했다. 한국은행 국제경제부 노진영 과장은 “올해는 3대 곡물의 주산지인 러시아·미국·남미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가뭄과 고온현상이 발생해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예년엔 어느 한 지역의 생산량이 줄어 곡물가 인상폭에 제한이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3대 주요 산지가 한꺼번에 피해를 당해 가격이 어디까지 폭등할지 전망조차 어려운 지경이라는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현재까지의 곡물가 인상분만 국내 물가에 반영돼도 내년 초 당장 제분(27%), 두부(10%), 사료(9%), 우유(4%)의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획재정부 성창훈 물가정책과장은 “폭등한 국제 곡물가와 불안한 국제 유가가 연말이나 내년 초쯤 국내 물가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곡물에 대한 할당관세 연장 등 다각적인 방법을 동원하겠지만 물가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장정훈 기자 조홍석 인턴기자(연세대 경영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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