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파노라마] 표류하는 해태호가 지닌 희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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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프로야구 구단 중 최고의 명문구단을 꼽으라는 질문에 해태타이거즈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9번의 우승, 그것도 한국시리즈 진출 9번을 모두 우승으로 이끈 기적 같은 신화를 일궈낸 구단이 바로 해태다.

이기는 야구의 대명사 해태가 든든한 모그룹의 지원을 계속 받았다면 프로야구 판도는 어떠했을까. 선동열과 이종범 같은 대스타를 적어도 구단운영비 충당을 위해 임대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미국에 진출한 김병현 등 수많은 대어를 옷깃한번 잡지 못한 채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며, 박재홍을 위시한 연고권 선수를 타 구단에 내주거나 신인지명권 양도 내지는 포기를 밥먹듯 하지는 않았을 게다.

예견하건데 V10 이상의 위업을 달성하며 새로운 야구사를 작성했을 것이며, 광주는 한국 야구의 메카로 자리잡아 비좁은 무등경기장을 떠나 3만석 규모의 현대식 야구장 건설을 완료했을 것이다.

허나 이 모든 것이 한낱 공상에 그치고 있다는 현실은 해태 팬과 선수단은 물론이고 야구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안타까움으로 남아있을뿐더러, 어려움 속에서도 김성한 감독체제로 분전하는 구단에 대한 연민으로 작용하고 있다.

'타이거즈호'는 아직 공해상에 위치, 최종 포구를 정하지 못한 채 교신만을 거듭하고 있다. 유력한 대상은 '광양제철'과 체육복표 사업자인 '타이거풀스' 등 2곳. 이들이던 컨소시엄이 됐던 빠른 해결을 바라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주목할 것은 어떻든간에 구단소유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점이다. 타이거즈가 시즌을 보릿고개 넘듯이 어렵사리 넘어오는 사이 나머지 7개 구단은 재계서열 10위권 이내의 든든한 기업들로 라인업이 구축됐다. 기업 홍보 수단으로의 야구가 이어져 왔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해태의 새 주인은 그에 필적하는 재벌그룹이 아닐 전망이어서 야구단 소유와 운영의 근본적인 개념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야구가 해를 거듭하며 발전했더라면 지금은 손익분기점에 가까워진 재무구조를 가진 팀도 나올법했지만 95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이 이어지고 있다. 이는 야구단이 독립체가 아닌 모기업에 딸린 미운오리새끼 정도의 취급을 받는 실정에서 비롯된다.

10년전 주식시장은 지수 600-700선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500대에서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퇴보한 경제는 기업의 몰락을 가져왔고, 그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야구단도 자연 수난을 겪었다. 공격적인 전략은 꺼내보지도 못했다. 미국 메이저리그가 경제공황이던 30년대 그득한 관중석과 함께 중흥했던 것은 우리에게 시금석이었지만 방법론을 찾을 수 없었다.

이제야말로 우리 야구도 20년 역사와 새로운 세기를 맞아 전환해야할 시점에 이른것이다. 그리고 해태호가 새로운 변혁의 위치에 섰다. 대기업이 야구단 운영을 마다하는 이 시점은 야구산업을 꽃피울 수 있는 머리와 효율적으로 구단을 돌릴 수 있는 자본이 접점을 이룰 수 있는 기회라는걸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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