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늑대 살리기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2호 35면

1870년께부터 미국 옐로스톤 공원에서는 사슴 등 초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꾸준히 ‘늑대 사냥’이 이뤄졌다. 그후 60여 년이 지나면서 늑대의 씨가 말라 공원 생태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천적 늑대가 사라지자 초식동물의 개체수가 급증해 풀이 부족해졌고 굶어 죽는 사슴이 속출했다. 초식동물을 보호하려던 정책이 오히려 사형선고가 됐다. 국립공원 측은 1995년 캐나다산 늑대 3마리를 공원 내 방사하는 것으로 ‘늑대 살리기’ 작전에 재돌입했다. 수만 년 자연이 맞추어 놓은 퍼즐을 인간이 바꾼다는 것은 그 자체가 오만일 수밖에 없다. 우주만물은 최적의 순환시스템이 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다. ‘60조’에 이르는 몸 세포가 하나같이 최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려 유기적으로 협력한다. 시스템적으로 본다면 신체는 이상적인 ‘유토피아’다. 그런데 이러한 시스템이 제대로 유지하려면 세포들이 제때 죽어줘야 한다. 신체 내에서 해로운 ‘이상세포’가 만들어지면 대부분은 면역시스템을 통해 자체 세포는 자살, 외부 침입자는 살해된다. 이렇게 세포가 제때에 죽어주는 현상을 ‘아폽토시스’라고 한다.

그런데 시스템적인 ‘자살명령’을 거부하는 ‘암세포’도 있다. 이들은 조직 내에 기생하며 세력을 키운 뒤 본색을 드러내 신체시스템을 파괴한다. 조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공멸(共滅)’하는 거다.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위력과 상하가 공히 바른 도덕관을 가지고 법을 존중할 줄 알면 그런 사회에는 ‘암세포’가 자랄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며 ‘금전 만능주의’가 사회 곳곳을 타락시키고 있다.

이대로 방치되면 ‘공멸’의 길로 들어선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암세포’를 ‘암세포’로 인식하지 못하는 국민의 무신경이다. 자기 몸에 작은 이상이 생기면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면서 더 위험한 국가적·사회적 ‘암세포’는 뻔히 보면서도 둔감하다. 이런 ‘무관심’이나 ‘무책임’은 지난 정권들의 선전효과이기도 하지만 체념도 들어가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삼엄한 군사정권하에서조차 남한 내 외부 고정간첩이 수만 명이란 주장이 있었다. 지난 10여 년간 긴장완화 속에서 그 수는 얼마나 늘었을까. 일반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숫자일 것이다. ‘무용론’ 이야기를 들어도 할 말 없는 낙제점 국회, 유전무죄·무전유죄의 오명을 벗을 기회 없이 정치가로 탈바꿈하는 믿지 못할 사법부, 부정부패와 뒷북의 질타를 벗어나지 못하는 행정부가 자초한 결과들이다. 현재의 법 시스템하에서는 이들에게 처방할 ‘백혈구’는 안 보인다. 그렇다고 이들이 ‘자살세포’처럼 자살해 주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상당한 기업이 자기 이기심 때문에 종업원들에게 암묵적 범죄의 공범을 강요하고 있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사회가 혼탁하기 때문에 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야합’하고 ‘적당히 불법행위를 스스로 합리화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회를 시작하면서 배우기 때문이다. 소신을 실천하기가 어려운 사회시스템이다.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되고 방치해서도 안 된다. 이제 옳고 그른 것을 바르게 말할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회인을 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이 절대적이다. 지난 수십 년간 ‘잘살기’ 위해서 ‘바르게 사는 것’을 포기했었다.

입에 가시 같은 ‘도덕’을 치워버린 채 우리는 돈을 탐했었다. 우리의 순환 생태계에서 ‘늑대’를 말살시켜 버린 것이다. ‘도덕’이 결여된 사회는 필연적으로 ‘공멸’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모든 국가는 ‘금욕주의’로 시작해서 ‘쾌락주의’로 멸망했다.



김재명 부산 출생. 중앙고성균관대 정외과 졸업. 1978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전자 등에서 일했다. 저서로 광화문 징검다리가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