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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집권 여당의 내우내환 치료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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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02면

새누리당 대선 경선이 유례없는 ‘경선 보이콧’ 사태로 치닫고 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김태호 의원, 김문수 경기지사(기호 순) 등 이른바 비박(非朴) 주자 3인은 4·11 총선 공천 비리 파문과 관련해 4일 황우여 대표 사퇴를 압박하고 나섰다. 전날 밤 KBS 경선 주자 TV토론회에 불참한 데 이어 이틀째다. 비박 캠프에선 전당대회(8월 20일)까지 보름쯤 남은 경선 일정을 모두 거부할 기세다. 경선 후보 사이에 오가는 말도 거칠어졌다. 박근혜 후보는 3일 밤 “조금이라도 당에 애정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행동할 수는 없다. 다른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이에 김태호 의원은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당을 망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경선 보이콧을 부른 발단은 비례대표(23번)로 당선된 현영희 의원이 박 후보의 측근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는 공천 비리 의혹이다. 현기환 전 의원은 “공천과 관련해 전혀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불길은 박근혜 캠프로 옮겨 붙고 있다. 새누리당으로선 공천 비리라는 내우(內憂)에다 경선 보이콧이라는 내환(內患)이 겹친 꼴이다.

이런 사태를 맞아 새누리당과 경선 후보들의 속내는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지켜보는 국민의 생각은 간단명료할 수 있다. 공천 비리 의혹은 당내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철저히 조사하되 그 결과에 따라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건 때 새누리당이 주장했던 심판의 잣대를 이제 스스로 적용할 때가 됐다. 황우여 대표의 사퇴는 어느 정도 진상이 드러난 뒤 결정될 일이 아닐까.

또 하나 지적할 대목은 집권 여당답지 못한 절차민주주의의 낮은 수준이다. 1987년 직선제 이후 역대 대선 때마다 당내 경선의 공정성은 항상 시빗거리였다. 때론 탈당, 때론 경선 불복의 명분이 됐다. 그러나 이번 같은 집단 보이콧 사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 더욱이 경선 후보들이 광역 지자체의 시장·도지사 경험을 가진 중진 인사임을 감안할 때 착잡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 집권 여당의 경선 후보들이 서로를 ‘독재’니 ‘생떼’니 비난하는 건 낯뜨거운 장면이다. 미국의 정당처럼 승자와 패자가 화합·축제의 분위기를 연출하지 못할망정 경선판 자체가 깨지는 상황이 온다면 자라나는 세대에게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이번에 ‘경선의 하모니’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새누리당 후보가 누가 되든 대선 본선 경쟁력은 추락할 것이다. 때마침 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다.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 금메달이 아니라 지고도 이기는 당당한 패배의 주인공들이다. 새누리당이야말로 지금 ‘올림픽 정신’의 세례를 받아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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