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희, 남편 회사서 쇼핑백 건네며 3억원이라 말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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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공직후보자추천위원을 지낸 현기환 전 의원(왼쪽)이 3일 오후 부산지검으로 출두하고 있다. 이날 오전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오른쪽)은 새누리당이 긴급 소집한 최고위원회에 참석했다. 현 의원은 공천 뇌물을 현기환 전 의원에게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형수·송봉근 기자]

‘비망록’과 ‘수첩’의 진실게임이 벌어지게 됐다.

 새누리당 현영희 의원의 운전기사 겸 수행비서였던 정모(37)씨가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이 든 쇼핑백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며, 당시 상황을 분 단위별로 기록한 비망록(備忘錄)을 중앙선관위에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정씨가 ‘중간전달책’으로 지목한 조모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자신의 수첩을 토대로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본지가 3일 입수한 정씨의 비망록에 따르면 정씨는 3월 15일 오후 2시 부산 범천동 삼비빌딩 15층의 강림CSP 회장실(현 의원 남편 회사)에 도착했다. 한 시간 뒤 현 의원이 회장실에서 은색 쇼핑백을 건네며 “3억원”이라고 한 뒤 “서울역에서 조 회장(홍준표 전 대표 특보였던 조씨)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비망록에서 정씨는 KTX를 타고 6시45분 서울역에 도착해 ‘항공편’으로 부산에서 서울로 와 있던 조씨를 만났다고 했다. 이후 비망록의 묘사는 더 구체적이다. “서울역 한식당에서 불고기백반 2인분을 주문해 함께 식사를 한 뒤 쇼핑백을 조 회장에 건넸고, 조 회장은 (쇼핑백을) 본인이 가져온 루이뷔통 가방에 넣었다” “식사 후 서울역 2층 커피숍으로 이동해 조 회장이 현 전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서울에 왔으니까 잠깐만 서울역 쪽으로 와서 얘기 좀 하자’고 하니 현 전 의원도 ‘알았다’고 대답했다. 한참 기다려도 현 전 의원에게 연락이 없자 (조씨가 면담을 재촉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자 ‘현기환/알았습니다’라고 답신이 온 걸 보여주기도 했다”는 거다. “커피를 마시다 현영희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니 조씨가 ‘너무 늦었다. (가능성이) 10%도 안 된다. 힘들 것 같다’고 대답했다”는 대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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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망록엔 두 사람이 현 전 의원을 만나기 위해 서울 태평로 코리아나호텔 1층 커피숍으로 이동했다가 조씨가 정씨에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먼저 가라”고 해서 그를 혼자 남겨놓고 자리를 떠났다고 적혀 있다. 비망록이 사실이면 조씨가 3억원을 현 전 의원에게 전달했는지는 정씨도 확인하지 못한 셈이다. ‘배달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 전 의원과 조씨는 ‘알리바이(현장부재 증명)’를 대며 정씨의 주장을 원천 부인했다. 조씨는 “수첩을 확인해 보니 3월 15일 오후 4시 30분쯤 부산 롯데호텔에서 모건설업체 박모 부장과 만나고 있었다”며 “3월 5일 지방지 기자를 만나러 국회에 간 이후론 공천기간 중 서울에 간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 전 의원과는 2008년 만난 뒤론 본 일이 없고, 전화통화도 2011년 7월 이후론 한 일이 없다”고 덧붙였다. 조씨는 본지에 자신의 수첩에 적힌 3월 한 달간의 일정을 공개하기도 했다. 현 전 의원도 “3월 15일 저녁엔 (공천심사를 하느라) 여의도에 있었다. 통화내역을 떼본 결과 조씨와 통화한 사실도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3월 15일에 관해 한쪽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정씨가 그날 부산에서 서울역 주변을 간 건 그의 통화위치를 통해 확인했다”며 “검찰이 조씨의 항공편 탑승여부, 현 전 의원의 통화내역 등을 추적하면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효식·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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