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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아람 같은 오심 못 나오게 … 미친 듯이 검 휘둘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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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지연(왼쪽)이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 엑셀 노스아레나에서 열린 여자펜싱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를 공격해 득점에 성공하고 있다. 김지연은 준결승에서 세계랭킹 1위인 마리엘 자구니스(미국)를 꺾은 뒤 벨리카야까지 누르며 금메달을 따냈다. 사진은 캐논 EOS-1DX 카메라에 EF300㎜렌즈를 사용해 셔터 스피드 1/1600초, 조리개 F4.5 로 5회 다중촬영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여자 펜싱 사브르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낸 김지연 선수가 2일 시상대위에서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디엄(시상대) 앞에 서서 “골드 메달리스트 김지연”이라는 말을 들었다. 과연 내가 여기에 올라가도 되는 걸까. 동메달리스트인 올가 카를란(우크라이나)이 내 뺨에 축하의 키스를 했다.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일까. 런던 올림픽 펜싱 여자 개인 사브르에서 우승하자 ‘깜짝 금메달’이라고들 하신다. 사실 내가 더 깜짝 놀랐다. 소규모 국제대회에서도 1위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 오르다니. 내가 미쳤나 보다.

 미치지 않고서는 그렇게 검을 휘두를 수 없었다.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소피아 벨리카야(러시아)를 15-9로 이겼다. 강한 상대를 의식하면 움츠러들 것 같았다. 콩트르 아타크(역습)와 콩트르 파라드(막고 찌르기)를 번갈아 썼다. 잠시라도 멈춰 있으면 다리가 떨릴 것 같아서 부지런히 피스트를 뛰었다. 이번에 오심(에페 신아람)이 나온 것도 의식했다. 오심의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더 악착같이 달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경기가 끝났다. 금메달이다.

 사실 앞선 준결승이 더 떨렸다. 세계랭킹 1위 마리엘 자구니스(미국)에게 5-12까지 밀렸다. 평소 역전패가 많은데, 7점 차를 내가 뒤집기는 어렵다는 걸 알았다. 이기긴 어렵지만 한이나 풀고 가자. 전진, 또 전진했다. 수비 후 반격을 하는 내가 역습을 하자 자구니스가 꽤 당황한 것 같았다. 2피리어드 2분42초부터 10초 동안 연속 5득점, 역전승을 했다. 남자 경기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팬들이 모두 일어나 내게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그들에게 고맙고 내가 대견해서 눈물이 났다. 자구니스가 누군가. 2004 아테네 올림픽, 2008 베이징 올림픽 이 종목 우승자가 아닌가. 런던 올림픽 미국 선수단 기수로 뽑힐 만큼 올림픽 3연패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선수였다. 그가 “김지연에게 진 것을 아직도 믿을 수 없다”고 했다는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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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로 뽑혔지만 사브르 단체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듬해 대표팀 선발전에서는 16강에서 탈락했다. 태릉 선수촌 스탠드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김용율 펜싱 대표팀 감독님이 지나가다 멈춰 섰다. “너, 몇 강에서 떨어졌니.” 부끄럽지만 대답은 해야 했다. “16강이요.” 그러자 돌아온 말. “너 대표 선수 해볼래?”

 김용율 감독님은 나를 ‘국제용 선수’로 봐주신 것 같다. 대표 선발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지만 발 빠르게 치고 빠지는 내 스타일이 리치가 긴 외국 선수와 싸우기 유리하다고 보신 것이다. 스스로도 자신 없어 했던 김지연을 감독님이 알아봐 주신 것이다. 선발전이 아닌 와일드카드로 대표 선수가 됐으니 더 열심히 해야 했다. 내가 못하면 나도, 감독님도 욕을 먹는다. 팀 전체에 민폐다. 다행히 유럽 대회에서는 2~3등을 몇 번 했다. 물론 그래도 금메달 후보는 절대 아니었다.

 중학교 1학년, 펜싱을 처음 시작할 때 참 좋았다. 칼을 잡고 있으면 자꾸 찌르고 휘두르고 싶어졌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플뢰레를 했는데 욕심만큼 성적이 나지 않았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 솔직히 말하면 플뢰레를 못해서 사브르를 시작한 것이다. 플뢰레에서 찌르기만 할 때보다 찌르고 후려치는 사브르가 훨씬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육상을 했다. 하도 잘 달려서,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해서 친구들이 발바리라 불렀다. 잠시 태권도장을 다니기도 했다. 선수가 되려고 도복을 입은 건 아니었지만 태권도를 했다면 내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육상을 하면서 얻은 순발력도, 태권도를 하며 생긴 담력도 모두 펜싱 금메달을 위해 쌓아온 경험인 것 같다. 유치원에서는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피아노 학원에 다녔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피아노 선생님이 엄마에게 “지연이는 피아노 말고 다른 걸 시켜보세요”했다. “대체 넌 뭐하고 싶니”라고 묻는 엄마에게 “태권도 하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나를 두고 천재라고 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여러 불운과 행운이 겹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건 발바리처럼 열심히 뛰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올림픽 시상대 앞까지 왔다. 지금 난 너무 좋다. 사람들이 나를, 나의 이 순간을 잊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정리=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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