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 길라잡이] '할아버지 요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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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요의 시대는 떠났다. 지금 무심코 어른들 입에 올려지는 그 옛날의 창작 동요는 사실 일본 곡조를 닮은 것이다.

식민지 백성의 설움을 달래주던 그 시절 그 노래를 요즘 아이들은 청승맞다며 가까이하지 않는다. 충분히 수긍이 가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는 남아 있다.

책으로 출판되어 읽히는 양으로 치자면 결코 동화에 견줄 바가 아니지만, 수많은 시인들이 꾸준히 동시를 지어 발표하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동시의 비중은 아주 크다. 그런데 교과서 동시야말로 문제의 근원이다. 한 편의 시로서가 아니라 말로써 퍼즐 놀이를 하기에 더 좋은 것들을 싣고 있으니 애초부터 문학작품의 감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아무나 붙들고 한번 동시를 지어보라고 해보자. '무지개, 풀잎, 이슬, 햇살, 구름, 씨앗…' 따위 말들을 조합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아이들의 실제 삶과는 거의 관계가 없는 이상한 관습에 매달려 상투어를 남발하는 시인들에게 이 그릇된 통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임길택 시인은 달랐다. 그는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과 동화집 『산골마을 아이들』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탄광마을에서 농촌으로 학교를 옮겨가서 펴낸 시집 『할아버지 요강』(이태수 그림, 보리, 1995) 은 우리 아이들이 학교.농사일.자연 등과 실제로 어떻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정직한 눈으로 응축해 보여준다.

"서리 온 아침/당번을 하던 영미//걸레를 빠느라/붉어진 손이/그토록 조그마한 줄을/나는 미처 몰랐다. (「영미의 손」전문) " 이런 시를 읽노라면, 내가 아는 그 착한 시인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침마다/할아버지 요강은 내 차지다. //(…) 어머니가 비우기 귀찮아하는/할아버지 요강을/아침마다 두엄더미에/ 내가 비운다. /붉어진 오줌을 쏟으며/침 한 번 퉤 뱉는다. (「할아버지 요강」부분) " 이런 시를 읽노라면, 시인의 몸 안으로 들어온 어린이 마음이 그대로 느껴진다.

세상은 갈수록 요란하다. 알맹이보다는 빈 쭉정이가 더 화려한 체 한다. 세상이 외면하는 것 같아도, 침묵을 머금은 절제된 시, 어린이를 닮은 소박한 언어가 무척 그리운 시대다.

그러나 심지가 없는 시인들은 온갖 떠들썩한 말들로 치장을 해가며 아이들을 현혹한다. 아이들이 시다운 시와 가까이하고 살았으면 좋으련만….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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