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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북한의 공공연한 국가 테러 위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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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이 북한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탈북자 등 남한 주민 4명의 실명을 적시하고, 이들을 처단하겠다고 위협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지난달 31일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조명철(전 통일교육원장) 새누리당 의원,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등 4명을 처단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른바 ‘동상 파괴 미수사건’에 대해 남한 정부가 공식 사죄하고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지 않으면 북한 주민 유인·납치행위에 가담한 이들 4명을 처단하겠다는 것이다. 남측 주민에 대한 공공연한 국가 테러 위협이다.

 북한은 일부 탈북자가 주축이 돼 김일성 주석 동상 파괴를 모의했다는 ‘동상 파괴 미수사건’을 ‘최고 존엄을 겨냥한 특대형 국가 정치테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건의 실체가 불분명하다. 거론된 당사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과장·왜곡이 확실해 보인다. 북한이 연일 이 사건을 거론하며 특정인에 대한 테러까지 위협하는 것은 이를 빌미로 남한과 중국 내 북한 인권 및 민주화운동의 기운을 꺾어 놓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주사파 출신인 김영환씨는 중국에서 북한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고문까지 당했다. 김일성과 면담까지 했던 그가 반북활동가로 돌아선 데 대해 북한은 배신감을 느낄 수 있지만 그건 북한의 문제다. 나머지 세 사람은 탈북자 출신이다. 나름 북한 내 엘리트였던 그들이 남한에서 북한 체제 비판에 앞장서고 있으니 북한 지도층에는 눈엣가시 같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엄연히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들을 일방적으로 처단하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우리 주권과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처조카였던 이한영씨 피살사건이나 황장엽 비서 암살 미수사건에서 보듯이 북한의 테러 위협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대북 ‘삐라’ 살포를 주도하고 있는 박상학씨를 독침으로 살해하려 했던 탈북자 출신 간첩이 얼마 전 중형을 선고받은 사례도 있다. 북한의 위협에 위축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서도 안 된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신변 경호를 강화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