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읽는다] "중국을 적으로 대하면 결국 적이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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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권경쟁(중국과 미국 누가 아시아를 지배할까)』
애런 프리드버그 저, 안세민 역
까치, 384p, 20,000원
A Contest for Supremacy - China, America, and the Struggle for Mastery in Asia
Friedberg, Aaron L., W.W. Norton&Co Inc, 2011

“21세기 패권경쟁은 태평양에서 벌어질 것이다. 미국이 태평양에서 기반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없다.”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의 말이다. 아시아에서의 미-중 경쟁을 경고한 것이다.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을 선언한 것이다. 지난 해 11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미국의 아시아 세기’란 글을 기고하면서 아시아 중심정책을 노골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미-중 패권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과연 미국과 중국이 벌일 패권전쟁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 아시아에서의 힘의 균형(Balancing)은 어떻게 짜여질 것인가?
딕 체니 미 전 부통령의 안보담당 부보좌관을 역임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의 핵심 인물 애런 프리드버그(Aaron Friedberg)프린스턴대학 국제정치학 교수의 최근 작 『패권경쟁(A Contest for Supremacy)』이 관심을 끄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란 이슈에 천착했다. 5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지난해 책을 출판했다. 한국에서도 지난 4월 발 빠르게 번역 출판됐다.

프리드버그 교수는 미-중 양국이 현재 이루고 있는 균형은 아주 깨지기 쉬운 '불안한 균형'이라고 평가한다. 양국 간 힘의 격차는 줄어들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와 정치 시스템의 차이는 계속 커지고 있다. 충돌할 수밖에 없는 요소다. 물론 양국 사이에는 ▶경제적 상호의존 ▶중국의 일부 정치적 자유화 ▶중국의 적극적인 국제기구 참여 ▶전지구적 공동 위협의 존재 ▶핵무기의 존재 등 협력의 가능성과 필요성이 높아가고 있다. 그러나 힘의 격차 축소와 이데올로기 갈등은 이 같은 협력 요인을 압도한다. 갈등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군부는 중국이 언젠가 미국의 ‘대등한 경쟁자(peer competitor)’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한다. 중국에 대해 ‘힘의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의 급박한 과제로 대두된다. 미군은 중국의 성장을 견제하기 위해 다음 세 가지 조치를 취한다.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군의 역량을 보존하고 강화하며 ▶기존의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세력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새롭게 형성하고 ▶중국의 선진 기술 접근을 제한해 하이엔드 부문의 군사력 증강을 억제한다.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추진한 ‘미군 재배치(Global Posture Review)’ 계획은 이의 일환이었다.

2009년 등장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클린턴, 부시 행정부와 달랐다. 대중국 정책을 강경한 정책에서 교류정책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궤적을 보였다. 2009년 11월 첫 중국 방문을 앞둔 오바마 미 대통령은 달라이 라마 면담 요청을 거부했다. 199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언론은 “중국의 환심을 사려는 뜻”으로 해석했다.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차관은 중국과 ‘전략적 보증(Strategic Reassurance)’ 관계 수립을 주장했다. 하지만 2010년 1월 오바마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180도 전환한다. 대만 무기 판매를 허용하고, 달라이 라마를 만난다. 남중국해 영토분쟁을 중재하겠다고 나섰고, 한국과 서해안 합동훈련을 강행했다.

왜 오바마 정부의 대중국 정책이 U턴했을까? 저자는 무역과 기후 변화 협상처럼 교류정책을 유지해야 할 안건에서 느꼈던 미국의 좌절감을 원인으로 꼽는다(p.140). 즉, 오바마 대통령은 ‘전략적 보증’관계를 수립하고자 중국에 손을 내밀었으나 중국은 온건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욱 단호한 행동을 취했다. 중국이 미국의 호의를 거부하자 오바마 행정부는 결국 정책 스펙트럼에서 잠시나마 교류정책의 끝을 향해 갔다가 봉쇄적 개입이라는 중간지점으로 되돌아갔다.

저자는 대중국 봉쇄적 개입정책의 리스크를 우려한다. 봉쇄는 교류 정책보다 설득력이 강하다. 군사적 우위 정책은 대중적 지지기반을 넓히기 쉽다. 그러나 이는 중국으로 하여금 공격적인 성향을 추구하게 만든다. 어느 쪽이 먼저 움직였는가 상관 없이, 작용은 반작용을 낳고, 두 강대국이 칼을 뽑을 때까지 지속된다. 하지만 이는 가능성의 영역이며, “중국을 적으로 대하면, 결국 중국은 적이 된다”는 주장이 현재 미국의 일반적 통념이다. 학계와 정책 결정 담당자 대다수는 교류정책을 지지하고, 군사적 우위 유지정책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프리드버그 교수는 제5장 “사물의 경향”, 제6장 “도광양회(韜光養晦)”, 제7장 “싸우지 않고 이긴다”에 걸쳐 중국의 학자들과 정책 담당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중국의 전략을 파헤친다. 그가 파악한 중국은 이렇다.

중국은 미국과 다르다.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의 말을 빌리면 “중국의 장수들은 미래를 투영하고 미래의 정해진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수단을 동원하는 방법도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어떠한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그 상황에 내재되어 있는 바람직한 요인을 최대한 그리고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힘의 관계를 정밀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국의 정치지도자들은 상황의 본질, 사물의 경향, 혹은 사건이 전개되는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러한 이해를 자신의 장점으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현재 세계의 지배적 트렌드, 국제 시스템에서 파워의 분산 형태, 중국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도전 혹은 위협의 근원을 파악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중국이 추구하는 목표는 그 다음의 과제다.

1991년 덩샤오핑이 제시한 '24자 전략'은 중국 지도자들에게 불변의 진리다. 즉, 냉정하게 관찰하자(冷靜觀察), 우리의 입장을 확고하게 견지하자(穩住陣脚),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침착하게 대처하자(沈着應付), 우리의 역량을 모두 다 드러내지 말고 때를 기다리자(韜光養晦), 두드리지게 나서지 말고 낮은 자세를 유지하자(善于守拙), 리더십을 주장하지 말자(絶不當頭)는 내용이다. 요약하면 중국은 ▶대립을 피하자 ▶국력을 총체적으로 키우자 ▶점진적으로 전진해나가자는 세 가지 대미국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가지고 중국은 적어도 아시아에서의 ‘지배적인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 중국의 전략 목표의 핵심은 공산당 일당독재의 유지다. 특히 중국 지도자들은 중국이 대외적으로 강력할수록, 공산당 정권도 대내적으로 강력해진다고 믿는다. 반대로 대외적으로 약해 보기거나 굴욕을 겪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면, 공산당 정권도 권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결국 공산당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우려는 공산당이 대외적인 굴욕에 더욱 민감하게 만들어 외세의 도전에 더욱 강력하게 맞서게 한다. 여기에 ‘화평연변’에 대한 우려는 중국으로 하여금 서구의 민주국가와는 비자 면제협정 체결을 금지하게 만들었다.

프리드버그 교수는 제8장 ‘영향력의 우위’, 제9장 ‘힘의 우위’에서 미-중 패권경쟁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저자는 지금까지 중국은 자신의 성장에 대한 미국의 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시켜왔으며, 미국은 중국의 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결국 미국이 중국의 성장에 효과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력의 우위를 중국에 내어주고 이는 미국의 안보공약의 기반을 흔들어 동맹관계를 약화시키고 중국이 지배적 우위를 구축할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중 관계의 대안은 뭘까? 먼저 미래 중국의 전망은 두 가지다. 하나, 약하고 안정적이지 못하며 여전히 독재국가로 남는 경우다. 둘, 부유하고 강력하며 점진적으로 민주화되어가는 나라다. 미국이 취할 정책으로 저자는 봉쇄정책과 유화정책 혹은 교류정책의 증진을 옵션으로 제안한다. 하지만 매파에 속하는 저자는 “중국 인민해방군은 창건 이후 미국(1950), 인도(1962), 러시아(1969), 베트남(1979)을 상대로 기습공격을 감행했다”며 “미국은 중국과의 교류를 지속하면서도, 동맹국들과 함께 강제력과 억지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한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류정책보다 군사적 우위를 통해 중국을 압박해야 한다는 결론이다. 이를 위한 최선의 방법론으로 프리드버그 교수는 다음과 같이 미국의 소프트 파워를 제시한다.

“미국에 지속적인 개방은 자신감의 표현일 뿐만이 아니라 국력의 지속적인 원천이다. 미국이 아시아와 세계에서 힘의 우위를 유지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미국의 가장 훌륭한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이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xiao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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