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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혁명, 유머, 보통사람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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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올림픽 개막식은 개최국의 자랑거리를 맘껏 뽐내는 자리다. 27일 밤(현지시간) 펼쳐진 런던 올림픽도 그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땐 사상 최대 규모인 1억 달러(약 1140억원)를 투입해 중국의 문화·역사를 과시했다. 하지만 4년 뒤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연출자 영화감독 대니 보일(55)에게 주어진 예산은 4800만 달러였다.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긴축의 허리띠를 졸라맨 영국 정부로선 적지 않은 규모지만 ‘베이징을 어떻게 능가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보일 감독은 개막식 전 기자회견에서 “베이징은 베이징이고, 런던은 런던”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영국 젊은이들의 우울한 현실을 감각적으로 다룬 영화 ‘트레인스포팅’으로 유명해져 ‘슬럼독 밀리어네어’로 아카데미상 8개 부문을 휩쓴 인물이다. 27일 밤 그의 개막식은 ‘놀라운 섬나라(Isles of Wonder)’라는 주제하에 과하지 않게, 그러나 영국의 문화 콘텐트와 역사적 자산을 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는 “영국 특유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지휘한 개막식을 3개의 코드(code)로 정리했다.

◆서사성=런던은 올림픽 역사 이래 최초로 1908년과 48년에 이어 세 번째로 올림픽을 주최한 도시다. 영국의 국제적 위상을 볼 때 여유도 있다. 굳이 개막식을 통해 영국의 모든 것을 전 세계에 홍보하겠다는 조급증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다. 보일 감독이 고른 건 영국 왕실의 역사도, 대영제국의 영광도 아닌 영국의 근현대사다. 평화로운 목초지 풍경으로 시작해 산업혁명을 이끈 노동자계급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영국이 산업화를 통해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걸 알리면서 산업혁명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추모의 뜻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보일 감독의 주특기인 영화·음악 등 문화콘텐트로 화려한 스펙터클을 더했다.

◆유머=베이징과 런던의 가장 큰 차이는 유머 코드다. 보일 감독은 개막식 전 “영국 특유의 유머 감각을 기대하라”고 얘기했다. 진지함 일색이었던 베이징 개막식과 다른 지점이다. 개막식의 깜짝 쇼 중 가장 큰 웃음을 자아낸 이는 ‘미스터 빈’으로 잘 알려진 배우 로완 앳킨슨이다. 그는 지루한 표정으로 코를 풀거나 하품을 하다 급기야 졸기까지 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또 제임스 본드 007 시리즈도 유머 코드로 풀어냈다.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헬기로 안내한 다음 스타디움으로 데려온다는 깜짝 설정이다. 유머 코드가 반짝인 곳은 이 영상의 엔딩이다. 경기장 위에 떠 있던 헬기에서 여왕 복장을 한 스턴트가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렸다. 아기자기한 유머 감각이 돋보였다.

◆참여=개막식엔 여왕은 물론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등 전 세계 VIP들이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개막식의 주인공은 ‘보통사람들’이었다. 7500명의 일반인 자원봉사자, 영국 국립무료의료제도(NHS) 직원들, 올림픽스타디움을 건설한 500명의 노동자들을 행사에 참여시켰다. 하이라이트는 최종 성화 봉송 주자였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졌던 최종 주자는 유명인일 거라는 예상을 뒤엎고 7명의 무명 올림픽 꿈나무가 발탁됐다.

런던=전수진·오명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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