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아치' 브래드 피트의 코미디 '멕시칸'

중앙일보

입력

카메라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아파트 침대에 함께 있는 남녀를 비춘다.

눈을 감고 비스듬히 시트에 얼굴을 기댄 탓에 커다란 입이 더 커 보이는 줄리아 로버츠와 전라(全裸) 로 침대에 걸터 앉아 근육질이 돋보이는 브래드 피트가 눈에 들어온다.

둘이 처음으로 함께 주연을 맡은 영화란 사실을 새삼 각인시키기라도 하듯 고어 버빈스키 감독은 시작부터 둘에게 방점을 꼭 찍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 중에 '허걱' 이란 게 있다. 턱이 빠질 정도로 어이없는 상황을 맞았을 때 사용하는 그들만의 표현이다.

'멕시칸' 은 남녀의 달콤한 사랑을 다룬 로맨틱 코미디 장르지만 관객으로 하여금 곳곳에서 허걱 소리를 내게 만든다. 로맨틱 코미디 특유의 멋과 깔끔함보다는 주접스럽다고 느껴질 만큼 망가진 주인공을 내세운 데다 치밀한 구성보단 헛웃음이 나올 만큼 이야기를 꼬고 꼬기 때문이다.

갱단에 발목이 잡혀 지긋지긋한 삶을 사는 제리(브레드 피트) 와 그런 그를 구박하면서도 사랑하는 샘(줄리아 로버츠) .

이들은 구질구질한 삶을 청산하고 라스베이거스로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어리숙한 제리가 갱단의 주문을 거역하지 못하고 일거리를 받아온다. 멕시코까지 가서 전설의 총 멕시칸을 찾아와야 한다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로 인한 다툼 끝에 둘은 결별을 선언하지만 뒤죽박죽 사건들은 그들을 생경한 땅 멕시코에서 다시 만나게 만든다.

분노에 가득찬 형사( '세븐' ) 나 화사한 미소를 띠며 죽어갔던 작은 영웅( '흐르는 강물처럼' ) 으로 기억되는 브레드 피트는 이 영화에서 과장된 액션과 꺼벙한 캐릭터로 일관한다.

적을 눈 앞에 두고 총을 손가락으로 돌리려다 떨어뜨리기 일쑤고 개에게 명령을 할 때도 심각하게 총을 겨누는 '헛짓' 을 마다하지 않는다.

'귀여운 여인' '노팅힐' 등 전작에서 괄괄하지만 깜찍함을 잃지 않았던 줄리아 로버츠는 그 성격들을 한층 강화해 브레드 피트와 보폭을 맞춘다.

영화에서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는 이는 동성애자이자 킬러로 나오는 제임스 갠돌피니다. 로버츠를 인질로 잡고는 식당에 앉아서 함께 수다를 떨고 춤을 추기도 한다.

로버츠가 그의 헤어진 애인(남자) 이야기를 꺼내자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눈물까지 보이는 청승맞은 악당 역을 잘 소화해냈다.

'내 남자 친구의 결혼식' 에서 로버츠의 게이 남자 친구역을 맡았던 루퍼트 에버렛을 연상케 한다.

가끔 터지는 폭소의 진폭이 그다지 크지 않고 꼬인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이 영화가 바닥으로 푹 꺼지지 않도록 붙잡는 것은 다양하고 개성있는 음악이다.

프랭크 시내트라의 딸 렌시 시내트라가 부른 경쾌한 팝에서부터 총에 관한 전설을 회상하는 장면에 흐르는 익살스런 서부 영화음악, 그리고 고속도로가 나올 때마다 울려 퍼지는 멕시코 음악까지.

'포레스트 검프' '캐스트 어웨이' 의 앨런 실베스트리가 음악을 맡았다. 미국에선 올초 '한니발' 을 밀어내고 박스 오피스에 2주간 1위에 올랐다. 28일 개봉.

〈Note〉
줄리아 로버츠와 브레드 피트가 건 '순수한 마술' 이란 평이 나오는가 하면 '로버츠+피트〓0' 라고 극단적인 표현을 한 관객도 있다. 그래서 두 배우의 영화란 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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