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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된 차도 350만원 '노란 고물차' 대란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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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5월 26일 전남 여수 취적터널에선 15인승 승합차가 엔진 과열로 전소됐다(왼쪽). 15인승은 1995년식 차량도 중고차 매매사이트에서 거래되는 등 인기를 누리고 있다. [사진 여수소방서, 사이트 캡처]

지난 21일 서울 성동구 장안평중고차시장. 곳곳에 노란색 빛깔의 승합차가 보였다. 대부분 15인승이었다. 일부는 ‘어린이보호차량’이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가격을 묻자 자동차 중개상 신모(45)씨는 “2002년식은 800만원, 단종 직전의 2005년식은 1400만원까지 나간다”고 답했다. 그는 “손님 대부분이 학원차 용도로 차를 보러 온다”며 “도로교통법상 어린이보호차량으로 쓸 수 있는 노란색 차가 같은 차종에 비해 100만원 정도 비싸다”고 했다. 다른 상인 복모(57)씨는 “중고차는 보통 출고된 지 3년만 지나도 출고가의 절반으로 떨어지지만 15인승은 10년이 넘어도 50~70% 선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6일 오전 전남 여수시 율촌면 취적터널. 여수세계박람회를 보러 일행 11명과 가던 운전자 차모(60)씨의 15인승 그레이스 승합차 앞쪽에 불길이 일었다. 차씨는 차를 멈춘 뒤 소화기로 진압을 시도했지만 불은 더 크게 번졌다. 터널엔 유조차 2대가 있어 자칫하면 대형 폭발 참사로 이어질 수 있었다. 경찰과 소방서의 신속한 대응으로 다행히 불은 인명피해 없이 1시간 만에 꺼졌다. 하지만 승합차는 완전히 불에 탔다. 여수경찰서 관계자는 “승합차의 엔진과열로 불이 났다”며 “차량이 오래됐고 셔틀버스 등으로 쓰인 지입(차주가 학원 등과 계약을 하고 사람을 나르는 형태)차라 주행량도 많았다”고 말했다.

 단종된 15인승 중고 승합차의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부분 생산된 지 10년이 넘은 이들 차량은 주로 학생 통학버스로 쓰이고 있다.

 15인승 승합차는 학원차로 인기가 많다. 1종 보통면허로 운전 가능한 차 중 탑승 인원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서울 영등포구의 어린이집 원장 김모(37)씨는 “대형 버스를 구입할 형편이 안 되고 관련 면허도 없다”며 “아이들을 많이 태우는 15인승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업체들은 경제성을 이유로 2003~2005년에 15인승 승합차를 단종시켰다. 이로 인해 중고차 시장에선 15인승 승합차가 ‘귀하신 몸’이다. 한 중고차 매매 사이트에선 1995년식 15인승 승합차가 350만원에 거래 중이다. 인터넷에선 15인승 승합차를 재생산해 달라는 청원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운행 중인 승합차들의 안전이다.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르면 영업용 택시·버스는 각각 출고된 지 6년(기본 4년에 안전검사 후 2년 연장)과 9년의 ‘차령(車齡)’이 넘으면 폐차하거나 개인차량으로 써야 한다. 노후 차량 운행을 막아 승객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러나 유치원·태권도장 등 학원에서 학생 통학용으로 운행하는 승합차의 경우 사실상의 ‘영업활동’을 하면서도 폐차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개인차량이나 지입차량 형태로 승합차를 운용하기 때문이다. 남재경 서울시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2011년 말 서울에서 운영되는 통학차량 1362대 중 766대(56%)는 학원차량으로 신고가 안 돼 있다. 국토해양부 김기택 사무관은 “개인차량으로 통학버스를 사용하면 의무 폐차규정을 들어 단속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입차량 업체 관계자에 따르면 15인승 승합차 대부분은 생산된 지 10년이 넘고 통학버스 외에 기업·여행사 버스로도 쓰여 주행거리가 많다. 교통안전공단 석주식 연구원은 “상식적으로 오래되고 운행시간이 많은 차량이 사고 확률이 높다”며 “부품 단종 우려도 있고 어린이들을 주로 태워 사고가 나면 피해가 클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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