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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갈등만 일삼는 정치인, 중도 모르는 ‘저능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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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우 스님

성철(1912~93) 스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백련문화재단·불교인재원이 함께 마련한 ‘백일법문 강좌’. 전체 10번의 강연 중 네 번째 시간이 23일 오후 서울 조계사 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렸다. 강사 고우(75) 스님은 지난 강연에서 “다음에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인 ‘중도(中道)’의 의미를 남김 없이 설명하겠다”고 예고했었다.

 스님이 이날 꺼내든 ‘카드’는 과거 이름난 선사(禪師)들의 어록. 사례를 통해 깨달음의 세계를 실감나게 보여주려는 듯했다. 예로 중국 당나라의 임제 선사는 임종 직전, 제자인 삼성 스님에게 자신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고유의 깨달음)을 잘 이어가라고 당부한 뒤 미심쩍었는지 자신의 깨달음의 내용이 뭔지 말해보라고 했다고 한다. 삼성 스님은 평소 스승이 하던 대로 고함을 치며 화를 냈다. 미욱한 제자들의 깨달음을 재촉하기 위해 임제가 즐겨 썼던 일종의 충격 요법인 ‘할(喝)’이다. 그러자 임제 스님은 “빌어먹을 망아지 새끼가 내 정법안장을 진짜 멸해버렸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칭찬일까 한탄일까. 칭찬이었다면 두 선사가 주고 받은 내용은 어떤 것일까.

 고우 스님은 자신이 중도를 깨달은 사연을 소개했다. 평소 스님은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30m가 넘는 높이의 장대 위에서 한 발짝 더 내디디라는 화두의 의미가 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무심코 펼친 중국의 선서(禪書) 『육조단경』의 한 대목에서 화두를 풀 실마리를 얻는다. “정(定·정신 수행)과 혜(慧·지혜 연마)가 하나가 되더라도 그것은 도가 아니다. 통유(通流)해야 한다”는 구절이었다. 세 가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뭘까. 먼저 『육조단경』. 통유는 불교의 깨달음은 한 곳에 고정돼 있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가야 한다는 뜻이다. ‘백척간두’ 화두의 의미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수행의 최고 경지에 올랐더라도(백척간두), 그 성과에 얽매이지 말고 뛰어 내리라는 것. 이성적인 논리가 끊어진 곳, 그 너머로 자유자재 도약하라는 것이다. 임제 스님의 에피소드는 불성(佛性)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있다는 불가의 자명한 진실을 굳이 입에 담아 표현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경계한 것이다.

 고우 스님은 중도의 핵심은 ‘쌍차쌍조(雙遮雙照)’라고 강조했다. 너와 나, 우열의 구분이라는 양 극단을 없애고(雙遮) 중도에 들어가면 양자가 새롭게 보인다는 것(雙照)이다. 나를 주관, 상대를 객관으로 생각하는 대립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지였다. 스님은 그러면서 정치권을 강하게 질타했다. “진보·보수로 나뉘어 갈등·대립만 일삼는 정치인들은 저능아들”이라고 일갈했다. “진보나 보수도 국민을 행복하기 위한 방편인데 그 방편에만 매달려 정작 목표는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부터 중도를 받아들이라는 주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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