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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 알고보니 쉽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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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아무리 과학 대중화 시대라지만 현대물리학은 여전히 소수의 수재 집단만 이해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 겁부터 먹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자폭탄과 같은 엄청난 발명품의 기초가 된 상대성 이론의 공식(이건 그나마 책 겉장의 아인슈타인 사진을 보고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다)에 관한 이야기라니….

하지만 신간 『E=mc2(제곱)』은 그런 생각이 잘못된 선입관임을 보여준다.쉽고 재미있으면서 지적 호기심을 너끈하게 채워줄 대중적 과학서의 본보기가 될 만한 책이다.

과학에는 거의 문외한인 사람도 한번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단숨에 끝까지 읽고 "아,상대성 이론도 별것 아니군"하며 어깨를 으쓱할 수 있을지 모른다.

저자 역시 물리학 전공자가 아니다.옥스포드 대학에서 지적 역사의 연구조사법을 오랫동안 가르쳐온 그는 "상대성 이론의 모든 것을 담은 또 하나의 해설서를 쓰거나 그동안 지겹도록 많이 씌여진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또 하나 보태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공식인 'E=mc2의 전기(傳記)'라는 신선한 형식으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그래서 이 책은 1905년의 어느 쾌청한 봄날 베른 특허국의 별 볼 일 없던 사무관 아인슈타인이 E=mc2을 낳은 '탄생 신화'에서부터 시작,먼저 이 공식의 족보인 '가계사'를 훑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먼저 중등교육조차 못마친 가난한 영국의 제본공 출신인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를 발견함으로써 '에너지(E)'의 개념을 확립하게 된 일, 16세기 영국의 교재 집필가에 의해 처음 시도된 부호 '='이 같은 의미로 쓰였던 '//''[:' 등과의 치열한 생존경쟁에 살아남은 과정이 그려진다.

여기에 '질량(m)'보존의 법칙을 발견해낸 프랑스의 과학자 라부아지에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결정적 실수,갈릴레오 ·카시니 ·뢰머 등의 과학자들이 '빛의 속도(c)'를 측정하기 위해 애썼던 일화들이 더해진다.

또 속도에 '제곱(2)'을 하는 것이 에너지를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임을 주목했던 샤틀레 백작부인과 볼테르의 슬픈 연애사 등 과학사의 뒷 얘기들을,저자를 가이드 삼아 슬슬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이 기호들 각각의 개념이 머리 속에 뚜렷이 그려진다.

이어지는 것은 E=mc2의 비극적 성장사.약간의 질량을 가진 물질도 알고보면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응집체라는 이 공식의 원리가 겨우 23㎏ 남짓한 우라늄을 가공할 위력의 무기로 바꾸는데 이용됨으로써 발생한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 말이다.

물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대 영국 ·미국의 숨막히는 첩보전 상황도 곁들여진다.

또 전쟁을 겪고 장년 나이에 이른 E=mc2이 비상구 표시등 ·화재경보기와 같은 일상적 제품에서부터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까지 응용되는 모습은 이 공식을 친근하면서도 위대한 대상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즉 이 책은 근 ·현대 과학사 뿐 아니라 상대성 이론의 입문서로서 일반인들에겐 막연하기만 했던 과학이론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제시해준다.동시에 주인공 E=mc2의 드라마틱한 성장사 속에 인간의 열정과 욕망,문화적 갈등과 정치 투쟁의 모습까지 한 편의 소설처럼 녹여낸 저자의 역량에 경의를 표한다.

□ Note
조역 및 단역으로 출연하는 많은 인물들과 물리학 ·화학 ·천문학 이론의 개념들에 대한 추가 설명이 담긴 부록도 놓쳐선 안될 읽을거리다.

저자가 더 읽을거리로 추천해놓은 책들 중 물리학 입문서인 『스타 트렉의 물리학』(로렌스 크라우스 지음,영림카디널, 1996)과 원자폭탄 연구자들의 집합소였던 로스앨러모스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1,2』(리처드 파인만 지음,사이언스북스,2000), 상대성 이론 입문서『아인슈타인과 떠나는 시간과 공간 여행』(러셀 스태나드,지경사,1994),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학문과 세계관을 함께 보여주는 『철학 속의 과학 여행』(바네시 호프만,열림원,1989) 등이 번역본으로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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