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 도는 병원선 국비 지원 끊긴 지 10년 … 지자체들 “도와주오” SO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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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을 시작으로 보령시 등 충남 서해안 6개 시·군의 28개 섬 지역 주민 4229명을 순회 진료하는 충남도청 소속 ‘병원선 501호’. [사진 충남도]

12일 오전 10시 충남 보령시 녹도 선착장. 보령시 대천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1시간30분 가면 만날 수 있는 섬이다. 이날 섬 주민들에게 특별한 손님이 찾아왔다. 160t급(길이 38m) 충남도청 소속 병원선(충남 501호)이다. 병원선이 도착하자 주민 50여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배에 올랐다. 이들은 병원선 안에서 진료와 함께 약을 받았다. 일부 주민들은 X-선 촬영 등 검진도 했다.

녹도 주민 122명 가운데 72명(59%)은 65세 이상 노인이다. 상당수는 당뇨·고혈압 등 성인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병원을 이용하기는 어려운 처지다. 섬에서 최단 거리 육지인 보령시까지는 여객선이 하루에 두 차례밖에 운행하지 않는다. 배를 이용하더라도 육지를 오가는 시간이 하루 3시간을 넘는다. 고혈압을 앓고 있는 주민 이종하(70)씨는 “병원선이 와야 한 달치 약을 얻을 수 있다”며 “병원선 때문에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충남도 병원선 501호 내 치과진료실에서 의료진이 섬 주민을 치료하고 있다.

병원선은 충남을 비롯, 인천, 전남, 경남 등 섬을 끼고 있는 전국 4개 시·도에서 운영 중이다. 1971년 정부가 도입했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섬 주민의 건강관리 차원이었다.

충남도 병원선에는 내과·치과·한의과 등 3개 진료과목에 각각 의사(공중보건의) 1명씩 배치돼 있다. 의사를 포함해 간호사·임상병리사 등 의료진 7명과 선박 관리직 10명 등이 병원선에서 근무한다. 충남지역 섬 28개(주민 4229명)를 순회 진료한다. 섬은 보령·서산·당진시와 서천·태안·홍성군 등 6개 시·군에 있다. 1개 섬에는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들른다. 진료는 모두 무료로 하고 있다. 충남도 병원선 운영에는 연간 10억원이 든다. 운영인력 인건비와 약품비, 선박 유지관리비 등이다. 2002년까지 운영비 전액을 국비로 지원했다. 하지만 2003년부터는 국비 지원이 중단됐다.

이후 충남 등 4개 시·도는 병원선을 자체 예산으로 운영해왔다. 4개 시·도가 최근 5년간 병원선 운영에 쓴 예산을 보면 ▶충남 36억원 ▶인천 19억원 ▶전남 109억원 ▶경남 28억원 등이다. 전남도는 병원선 2척, 나머지 시·도는 1척씩 운영 중이다.

 이들 지자체는 병원선 운영 때문에 재정압박이 심하다고 하소연한다. 4개 시·도 병원선 운영 예산은 올해 42억원에서 내년 47억 원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충남도 권오석 보건행정담당은 “의료장비 구입, 선박 유지 등에 필요한 예산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며 “열악한 재정형편 때문에 병원선 운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들 광역자치단체는 병원선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정부가 지원해 줄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지자체는 “국민 건강의 책임 주체가 국가인 만큼 도서 주민에 대한 공공의료서비스도 정부가 일정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며 “병원선 운영비 50%정도는 국고에서 지원해달라”고 주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와 송영길 인천시장, 박준영 전남지사, 김두관 경남지사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의 건의문을 만들어 정부에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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