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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는 이름, 홍보 전단… 60여 종 ‘네이밍의 전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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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호 10면

성인남자라면 나이와 상관없이 관심을 갖는 소재가 있다. 발기부전 문제다.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는다. 이젠 이런 고민을 단돈 2000~3000원이면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비아그라의 특허가 끝나면서 복제약(제네릭)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판 허가를 받은 제품 수만 50여 가지다. 판매 경쟁이 후끈 달아올랐다. 구입도 과거보다 용이해졌다는 소리가 들린다. 이로 인해 발기부전약의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비아그라 특허 만료 후 두 달, 쏟아지는 복제약에 오·남용 비상

서울 중구에 있는 A내과 의원. 직장인 두세 명이 병원 대기실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내과인데도 “발기부전을 값싸게 치료할 수 있으니 상담하라”는 팸플릿이 탁자 위에 놓여 있다. 직장인 김경호(42·가명)씨는 “식은땀이 흐르고 복통이 심해 병원에 왔다. 기다리는 시간에 팸플릿을 본 뒤 발기부전약도 처방받았다”고 말했다.

B제약사는 파격적인 포장 단위로 논란이 됐다. 비아그라 복제약을 판매하면서 제품 포장 단위를 24알 기준으로 팔고 있다. 비아그라를 포함해 기존 발기부전 치료제는 한 달 복용을 기준으로 2~4알 포장이 일반적이다. 한국인 특성을 반영했을 때 이 정도가 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24알을 기준으로 포장하면서 제약회사가 발기부전약 오·남용을 부추긴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대로변에서 살짝 벗어난 곳에 있는 서울 종로구의 C약국. 30대 후반 남성이 비타민음료를 구입하면서 쭈뼛쭈뼛 약사를 찾는다. 이내 주위를 살피더니 ‘발기부전 망설이지 말고 상담하세요’라고 씌어 있는 게시물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발기부전약을 달라는 의미다. 약사는 “건물 위층에 있는 병원에 가서 ○○○○○를 달라고 말하고 처방전을 받아 와야 약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10여 분 뒤 이 남성은 처방전을 받아와 약을 구입해 갔다.

식약청 심사 때 외설적 이름 많이 걸러
발기부전약 춘추전국시대다. 미국 화이자에서 개발한 ‘비아그라’가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13년이 지났다. 이후 시알리스·제피드 같은 다양한 특징을 가진 발기부전약들이 출시됐지만 비아그라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다. 그런 비아그라가 요즘 흔들리고 있다. 바로 비아그라 복제약 때문이다.

제약회사마다 비아그라 마케팅 경쟁도 치열하다. 4일 현재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을 마치고 식약청에 시판 허가를 받은 약은 53종이다. 기존 발기부전 약까지 포함하면 60여 개의 제품이 경쟁 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튀기 위한’ 마케팅도 극성이다.

첫 단계는 네이밍이다. 복제약은 자기만의 특성이 없다 보니 기억에 남는 이름으로 눈도장을 찍겠다는 심산에서다. 노골적이고 야릇한 이름을 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비아맥스·프리그라·프리야·팔팔·누리그라·세리비아·불티스 같은 식이다. D제약회사 관계자는 “회사 직원들을 상대로 제품명을 공모했는데, 후보로 나온 이름 중에는 발칵이나 콸콸 같은 이름을 제안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식약청으로부터 허가받기 전 임시로 지은 이름은 더 가관이다. 해라크라·스그라·쎄지그라·오르그라·오르맥스·자하자 등의 이름이 등장했다. 실제 몇몇 제약사는 ‘약 이름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식약청에서 승인을 거절당했다. 유태무 식약청 허가심사조정과장은 “제품명 때문에 뒷말이 많았고, 비뇨기과개원의협회에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약인데 정력제로 오해할 수 있다고 판단해 제약회사 담당자들을 불러 이름을 바꾸는 게 좋겠다고 권고했다. 이때 외설적인 이름은 많이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허가받은 제품 이름도 성적인 함의가 담겨 있는 것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제품은 어디까지나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 직설적이지는 않았다.
비아그라(viagra)는 본래 아무런 뜻이 없고, 발음하기 편하도록 네이밍했다는 게 화이자의 설명이다. 하지만 활력(vitality) 혹은 정력(vigour)같이 힘을 연상하는 단어에 나이애가라(niagara) 폭포를 연결시켰다는 풍설이 설득력 있다. 시알리스(cialice)는 프랑스어 하늘(ciel)과 자유를 의미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동화의 주인공인 앨리스(alice)를 합성했다.

동아제약 자이데나(zydena)는 결혼·연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zyjius와 해결사 denodo를 합쳐 만들었다. 중년·갱년기 부부의 해결사를 의미한다. 또 자이데나의 성분명인 유데나필인 ‘데나’와 ‘잘 된다’를 합쳐 ‘자 이제 되나’ 혹은 ‘잘 되나’를 뜻하기도 한다고 한다. 종근당에서 판매하는 발기부전 약 야일라는 산 이름을 차용했다. 산이 웅장하고 굳건한 남성의 이미지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JW중외제약의 발기부전 약 제피드(zepeed)는 절정(zenithal)과 제트기의 빠른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알파벳 Z와 영어 속도(speed)를 합쳤다.

협심증·고혈압 환자 잘못 먹으면 큰일
약값을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비아그라 복제약의 약값은 한 알당 오리지널 제품(1만2000~1만5000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대한비뇨기과개원의협의회 임일성 회장은 “중국에서 밀수입된 가짜 발기부전 약을 먹던 사람이 값이 싸졌다는 말을 듣고 병원을 방문하는 등 가짜 약을 대체하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일부는 정력제로 착각해 자의적으로 더 많이 복용하거나 자신의 약을 다른 사람에게 주기도 해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약물 오·남용이다. 발기부전은 성적 자극을 받아도 발기가 이뤄지지 않아 성관계가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의약품을 정력제로 오인, 정상적인 사람도 많이 먹으면 성기능이 강화된다는 식으로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발기부전약은 제대로 먹으면 위험하지 않지만 고혈압·협심증 같은 심혈관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전남대병원 비뇨기과 박광성 교수는 “협심증으로 질산염 계통의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은 약물 상호작용으로 위험할 수 있어 함부로 발기부전 약을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혈압이 낮아져 쇼크상태에 빠질 수 있다. 비슷한 이유로 고혈압·뇌졸중 환자도 발기부전 약을 잘못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

강동우성의학클리닉 강동우 원장은 “발기부전은 혈관·신경·부부갈등·호르몬 등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다. 무턱대고 약만 먹는다고 치료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남성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약청 의약품 관리과 전세희 사무관은 “조만간 관련 내용을 점검하기 위해 약사 감시를 실시하고 올바른 발기부전 약 복용법을 홍보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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