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나홀로 꿈쩍 않는 CD금리 … 혹시 리보처럼 짬짜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2009년 65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김선영(38)씨는 매달 이자를 낼 때마다 좀 미심쩍다. 시중 금리가 내리고 있다는데 1년 넘게 매달 32만원씩 내고 있어서다. 김씨는 “은행에선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라는데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단기 금리지표인 CD금리가 수상하다. 정부 고시금리도 아닌데 석 달째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일 기준 CD금리(91일물)는 3.54%로 지난 4월 9일 이후 요지부동이다. 만기가 같은 통화안정증권은 같은 기간 3.38%에서 3.22%, 은행채는 3.42%에서 3.28%로 크게 내렸는데도, 이런 시장 움직임과 별도로 움직인 셈이다.

 CD금리는 코픽스(자본조달비용지수)와 함께 고객이 은행에서 변동금리 대출을 받을 때 기준이 되는 금리다. 그런 만큼 시장의 움직임을 잘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도 CD금리가 시장과 따로 놀자 일각에서는 최근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의 리보(런던은행간금리) 조작 사태처럼 은행권이 CD금리 하락을 막기 위해 담합을 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일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CD금리가 하락하면 대출 이자도 낮아지기 때문에 대출을 통해 거둬들이는 이자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CD금리가 의심을 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먼저 금리 결정 과정이 시장이 아닌 설문을 통해 결정된다는 점에서 영국 리보와 비슷하다. 금융투자협회에서는 날마다 CD 거래를 많이 하는 10개 증권사에 설문을 돌리는데, 각 증권사가 매긴 금리 가운데 최고·최저치를 뺀 나머지 8개의 평균치를 CD금리로 고시한다.

 현재 CD를 발행하는 은행은 7곳에 불과하다. CD 발행 잔액도 2009년 103조원에서 지난달 말 27조원까지 줄었다. 그만큼 발행 은행의 입김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이젠 은행 두어 곳만 CD금리를 높게 또는 낮게 발행하면 금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이론적으로 담합이 가능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금리 움직임도 석연찮다. 단기금리는 국내외 자금 사정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CD금리는 지난해 6월 이후 1년 넘게 3.5%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낮아지는 비상식적인 현상도 일어난다. 요즘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2% 안팎으로 91일짜리 CD금리(3.54%)보다 크게 낮다. 금융연구원 김우진 연구위원은 “CD금리가 사실상 고정되면서 시장 금리가 내려도 대출 고객이 내는 이자는 줄지 않는다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은행들은 펄쩍 뛴다. CD금리가 고착화된 건 거래량·발행량 감소 탓에 발생한 현상이지, 인위적인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 시중은행 채권 담당자는 “마땅한 기준금리가 없다 보니 오래전부터 금융회사 간 거래되는 CD금리를 관행적으로 사용해 온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금융감독 당국에서도 아직까지 국내에서 인위적인 왜곡이나 담합 사례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권창우 은행건전경영팀장은 “CD금리 조작으로 수익을 챙기려면 은행-증권사 간에 담합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금융 시스템상 쉽지 않다”며 “그러나 조작의 개연성이 있고, 시중금리 움직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큰 만큼 시장에 대한 점검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