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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이 키운 ‘92파’ … 미국서 돌아온 ‘회귀파’ … 부모 덕 본 ‘태자파’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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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국 상하이의 야경. 중국 경제를 이끄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은 크게 다섯 부류의 CEO들을 탄생시켰다. 풀뿌리파에서부터 태자파까지, 이른바 ‘5대 문파’가 그것이다. [중앙포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 그는 올가을 공산당 총서기에 오를 예비 최고권력자다. 그는 부자이기도 하다. 블룸버그통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그의 일가 재산은 4억3100만 달러(약 4930억원)에 달한다. 청렴과 부패 척결을 외쳐야 하는 그로서는 부담스러운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태자당’으로 불리는 고위관리의 자녀들이 이권에 개입하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중국 내에서 이 같은 부류의 기업인들은 ‘태자파(太子派) CEO’로 분류된다. 부모의 후광을 업고 부를 쓸어 담는다. 그렇다고 중국에 특권층 기업인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크게 다섯 부류의 CEO들이 태어났다. 이들 ‘5대 문파(門派)’를 통해 중국 기업인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인내는 나의 힘, 풀뿌리파

대부분 거리 좌판에서 사업 시작
자전거·라디오 고치다 거부 일궈


류융싱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의 기치를 든 1970년대 말 중국은 기술도 자본도 없었다. 지천에 깔린 ‘사람’이 유일한 자원이었다. 무엇인가 해야 했다. 그들은 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팔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다 내다 팔았다. 소형 점포를 뜻하는 ‘거티후(個體戶)’가 등장한 것이다. 1980년 봄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의 한 거리에 라디오 수리점이 등장했다. 류융싱(劉永行)·융하오(永好) 형제가 운영하는 거티후였다. 그들은 설 명절 전후 7일 동안 자신의 월급보다 10배나 많은 돈을 번 뒤 ‘자본주의자’의 길로 접어든다. 첫 아이템은 메추라기였다. 새벽 4시에 시장에 나가 나팔을 불며 호객을 했다. 메추라기에서 시작한 사업은 사료·원자재·부동산 등으로 발전하며 ‘시왕(希望) 그룹’으로 성장했다. 중국 제1호 사영기업이었다.

 류 형제와 같은 풀뿌리파 CEO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사람들이다. 대부분 거리 좌판에서 시작해 거대한 부를 일궜다.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자전거 수리로 사업을 시작한 루관추(魯冠球)는 글로벌 자동차 부품업체의 CEO가 됐 다. 이들은 아주 작은 이문에도 기꺼이 뛰어들고,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고 기다릴 줄 안다. 근면·검소·인내, 풀뿌리파 기업인들의 성공 DNA다.

이름    기업

류융싱(劉永行) 둥팡시왕(東方希望) 그룹

류융하오(劉永好) 신시왕(新希望) 그룹

루관추(魯冠球) 완샹(萬向) 그룹

왕전타오(王振滔) 아오캉(奧康) 그룹

현대적 경영의 시작, 92파

덩샤오핑 남순강화서 개방 강조 뒤
지식인·공무원 10만명 창업 대열


궈광창

1992년, 중국은 아직도 천안문 사태(1989년 6월)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분위기를 역전시킨 게 바로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다. 그는 남부 도시에서 “사회주의 국가도 필요하다면 시장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다”며 개혁개방의 기치를 다시 들었다. 그의 발언으로 봄 동산에 들불 번지듯 중국 전역에서 창업 붐이 일었다. 공직을 떠나 창업 대열에 합류한 젊은이가 그해에만 1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1992년 창업했다는 뜻에서 ‘92파’라는 별명을 얻었다.

 상하이 푸단(復旦)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청년 궈광창(郭廣昌)은 주변 친구들과 돈을 모아 작은 컨설팅업체를 차렸다. 지식이 그의 힘이었다. 그가 제시한 브랜드 전략과 마케팅 노하우 컨설팅은 고객을 ‘감동’시켰고 사업은 번창했다. 지금은 부동산·금융·바이오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푸싱(復星) 그룹을 일궜다. 우한(武漢)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청년 핑룬(憑侖)은 부동산 그룹인 완퉁(萬通)을 경영하고 있고, 중앙정부에서 일하던 궈판성(郭凡生)은 최대 주식거래 사이트인 후이충왕(慧聰罔) 회장이 됐다. 이들은 주먹구구식으로 기업을 경영했던 풀뿌리파와는 달리 중국에 현대적 의미의 경영을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름    기업

궈광창(郭廣昌) 푸싱(復星) 그룹

핑룬(憑侖) 완퉁(萬通)

궈판성(郭凡生) 후이충왕(慧聰罔)

류사오광(劉曉光) 서우두(首都) 창업그룹

기술 혁신 선구자, 회귀파

실리콘밸리 출신 인재들 대거 귀국
미국과 인터넷 기술 격차 크게 좁혀


천훙

1989년 천안문 사태는 탱크로 진압됐다. 이에 발끈한 미국은 당시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중국 유학생들에게 장기 체류를 허용했다. 수리에 밝은 중국 유학생들이 모인 곳은 실리콘밸리. 당시 불던 IT 붐에 합류한 것이다. 천안문 사태가 진압된 지 10년이 지난 1990년대 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실리콘밸리 인재들이 대거 중국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한 손에는 기술을, 다른 손에는 자금을 들고 왔다.

 중국 투자은행(IB) 업체인 한넝(漢能)의 천훙(陳宏) 회장 역시 2003년 귀국행 비행기를 탔다. 중국 벤처에 매력을 느낀 그는 재무 컨설팅 업체인 한넝을 설립했다. 그는 모건스탠리, 골드먼삭스 등 대형 컨설팅업체에 맞서는 ‘중국 IB업계의 다윗’으로 불린다. 이 밖에도 최고 검색 사이트인 바이두(百度)의 리옌훙(李彦宏) 사장(뉴욕주립대 출신), 포털업체 소후(SOHU)의 장차오양(張朝陽) 회장(MIT), 중국의 반도체 기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린 덩중한(鄧中翰) 중싱웨이(中星微) 사장(버클리대) 등이 회귀파로 꼽힌다. 그들 덕택에 중국의 인터넷 기술은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0’으로 줄일 수 있었다. 천안문 사태가 중국 IT 업계를 발전시킨 아이러니가 연출된 셈이다.

이름    기업

덩중한(鄧中翰) 중싱웨이(中星微)

천훙(陳宏) 한넝(漢能)

리옌훙(李彦宏) 바이두(百度)

장차오양(張朝陽) 소후

국가가 키웠다, 국유파

국유기업 대형화 바람 타고 등장
철강·항공 등 엔지니어 출신 많아


쉬러장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이 집권했던 2002년 이후 국유기업 대형화가 이뤄지면서 이 분야에서도 스타급 CEO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국유기업 CEO들은 관료적일 것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정통 엔지니어 출신이 많았다. 세계적인 철강업체로 성장한 바오산(寶山) 강철의 쉬러장(徐樂江) 회장이 대표적인 예다. 1982년 장시(江西)이공대 졸업과 함께 바오산 강철과 인연을 맺은 그는 바오산을 한 번도 떠나지 않은 ‘바오산 맨’이다. 2004년 총경리(CEO)에 올랐고, 2008년에는 그룹 회장에 임명됐다. ‘살아있는 철강 신화’로 칭송받는 이유다. 국유기업인 디이(第一) 자동차그룹의 쉬젠이(徐建一) 회장, 보잉과 에어버스가 양분하고 있는 민간항공 시장에 도전장을 내민 중궈상페이(中國商飛)의 진좡룽(金壯龍) 회장, 세계적인 석유 메이저로 등장한 중국석유(CNPC)의 장제민(蔣潔敏) 회장 등도 서방에 잘 알려진 국유파 기업인이다. ‘포춘 글로벌 500’ 기업에 포함된 중국 국유기업이 38개에 달하는 게 국유파 CEO들의 성적표다. 이들이 회사 내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공산당 내부의 독특한 인재 양성 프로그램 덕이다. 중국 국무원(정부)이 관리하는 117개 대형 국유기업 회장 중 55%가 내부 승진에 의해 임명됐다.

이름    기업

쉬러장(徐樂江) 바오산(寶山) 강철

쉬젠이(徐建一) 디이(第一) 자동차그룹

진좡룽(金壯龍) 중궈상페이(中國商飛)

장제민(蔣潔敏) 중국석유(CNPC)

공산당 귀족 자제, 태자파

리펑·주룽지 전 총리 자녀들 대표적
전력·보안검색 분야 활약 두드러져


리샤오린

시기를 초월해 각 산업에서 굳건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권력형 CEO들이다. 부모의 후광을 등에 업고 막강한 부(富)와 기업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태자파’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전력이다. 홍콩 증시 상장업체인 중국전력의 총수는 리펑(李鵬) 전 총리의 딸 리샤오린(李小琳)이다. 리펑의 장남 리샤오펑(李小鵬) 역시 국유 전력회사인 화넝(華能) 국제그룹 회장으로 일했다. 금융 분야도 마찬가지. 중국 최대 투자은행(IB)인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의 주윈라이(朱雲來) 회장은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아들이다. 국가개발은행을 이끌고 있는 인물은 1940년대 후반 상하이시장을 지낸 혁명원로 천윈(陳雲)의 아들 천위안(陳元)이다.

 현 권력 서열 1, 2, 3위 지도자의 자제들 또한 각 업계에서 맹활약 중이다. 후진타오 주석의 아들인 후하이펑(胡海峰)은 공항·항구 등에 보안검색 시스템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서열 2위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사위는 중국공상은행과 메릴린치의 220억 달러짜리 합작사업에 관여해 이득을 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자바오 총리의 아들인 원윈쑹(溫雲松)은 아시아 최대 위성통신사로 꼽히는 중국위성통신그룹 회장이기도 하다.

이름    기업

리샤오린(李小琳) 중국전력

주윈라이(朱雲來) 중국국제금융공사

천위안(陳元) 국가개발은행

원윈쑹(溫雲松) 중국위성통신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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