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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외국인 투자자 대하는 이중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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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유효상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

최근 국내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인 유한킴벌리를 둘러싸고 의미 있는 법원 결정이 있었다. 지분 70%를 보유한 다국적 기업 킴벌리클라크가 주주총회를 통해 보유지분 비율에 따라 주주별 선임 이사 수를 4대 3에서 5대 2로 조정하려 하자 2대 주주(지분율 30%)인 유한양행이 이를 막기 위해 법원에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가 기각당했다. 유한양행은 이 같은 이사 수 변경 반대 외에도 특정 이사의 선임과 또 다른 특정 이사의 해임을 요구하는 등 총 3건의 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법원으로부터 모두 기각당했고 소송비용까지 전액 물게 됐다.

 매우 복잡한 소송이어서 각각의 쟁점을 여기서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이번 법원 결정에 주목할 것은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갖고 있는 외국인 투자에 대한 이중 잣대를 법원이 확실히 배제하고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을 내렸다는 점이다.

 사실 유한킴벌리의 두 주주들 간에 파열음이 들리기 시작한 것은 이미 몇 년이 지났다. 합작법인에서 주주 간에 의견이 다를 경우 분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러한 분쟁을 잘 조정하지 못하면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합작법인에 외국인 투자자가 들어 있게 되면 사정이 조금 달라진다. 론스타 이후 ‘국익’과 ‘먹튀’라는 단어가 국내 투자자의 방패가 되었고, 심지어 이러한 사회적 정서를 악용할 소지까지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대주주가 7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주총을 통해 특별 결의가 가능해 사실상 기업 경영을 책임지게 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30%의 국내 주주가 70%의 외국 주주로 하여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을 요구하다가 법원에서 기각을 당했다. 언뜻 보면 소액주주가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기업의 지배구조 측면에서 보면 법으로 보장된 기본적인 권리를 뛰어넘는 소송이었던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이번 판결은 적어도 기업 간의 분쟁에 있어 법원이 외국인 투자자에게도 국내 기업과 동일하게 권리를 보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더 나아가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과 연계해 이중 잣대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만약 우리 기업이 해외에서 70%의 지분을 갖고도 현지 파트너의 압박과 국민감정을 등에 업은 언론을 통한 공격 등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다면 과연 큰 틀에서 우리의 국익을 보호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중 잣대 문제에 대해선 법과 절차에 따라 엄중하게 대처하는 것이 전 세계에 나가 있는 우리 기업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길인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국익 보호다.

 이번 판결이 한편으로는 유한양행에도 그리 나쁜 판결이 아닐 수 있다. 만약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유한양행의 손을 들어줬을 경우 소송에서는 이기겠지만, 이로 인해 70% 주주인 킴벌리클라크가 자신들의 전 세계 네트워크에서 유한킴벌리의 비중을 줄여 버리거나, 향후 한국 시장의 투자 축소나 철수 등을 고려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한양행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나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해외 파트너와의 분쟁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해 반면교사로도 삼을 만한 사례인 것 같다.

유효상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