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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만화 각시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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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치고 “원작보다 낫다”는 평을 받는 경우 거의 못 봤다. 그런 의미에서 KBS 2TV 수목드라마 ‘각시탈’은 운이 좋은지 모른다. 원작 만화와 꼼꼼히 비교해 보고 싶어도, 당최 원작을 찾아보기 힘드니 말이다. 허영만의 만화 ‘각시탈’은 1974년 부길문고에서 처음 발간됐고, 80년에는 물개문고에서 12권짜리 시리즈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이날이면 ‘청소년 유해매체’인 만화를 한데 모아 불태우는 행사가 열리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 대부분 소각되거나 유실됐다. 옛 독자들에게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을 뿐, 전모를 알 수 없는 ‘전설 속의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현재 유통 중인 딱 한 권의 ‘각시탈’이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난해 내놓은 복간본이다. 1976년부터 월간지 ‘우등생’에 연재된 내용을 묶었는데, 모자란 듯 보이는 청년 이강토가 뛰어난 택견 실력을 가진 각시탈로 변신해 어릴 적 친구인 사카다 일본군 소위와 맞서는 에피소드가 담겼다. 현재의 매끈한 그림에 비해 다소 거친 ‘신인 허영만’의 그림체도 매력적이고,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촌스럽지 않은 유머가 반갑다. 복간본은 최근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1만 권 가까이 팔려나갔다.

1976년 작.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복간본.

 일제시대가 배경이지만, 이 작품은 ‘고통받는 이들을 대신해 싸우는 두 얼굴의 영웅’이라는 수퍼히어로 스토리의 전형을 충실히 따른다. ‘스파이더맨’을 즐기는 요즘 젊은 층에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작가는 “일제에 대항하는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 당시 엉터리 사회구조에 ‘엿 먹어라’고 한 방 날리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한다. 눈치 빠른 독재정권도 이 함의를 읽었던 모양. 각시탈에 힘입어 ‘색시탈’ ‘무쇠탈’ 등 유사 작품이 쏟아지자, “탈 쓴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가 너무 많다”는 황당한 이유로 연재 중단을 명령했다. 그리하여 만화 ‘각시탈’은 아직 미완결이다.

 원작에 없는 드라마만의 강점이라면, 일본팬들 눈치 보느라 출연을 고사했다는 한류스타들을 대신해 주인공을 맡은 배우 주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각시탈로 변신했을 땐 헐렁한 바지저고리와 얼굴의 반을 가린 탈 때문에 그 미모가 살아나지 않는다. 차라리 몸에 딱 붙는 양복 차림의 일본경찰 사토 히로시를 연기할 때가 더 멋있다는 불편한 진실. 주원 정도 생겼으면 ‘쫄쫄이’를 장착한 수퍼히어로도 괜찮잖아? 라는 건, ‘주원앓이’ 중인 누나의 맥락 없는 사심일 뿐이겠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