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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생선에게 고양이 맡긴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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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권석천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가 스캔들이라면 현 정부는 권력형 부패에 가깝다.”

 한 중견 검사는 두 정부에서 일어난 비리 사건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했다. 임기 5년차의 주요 사건을 보면 노무현 정부 때는 신정아·변양균 사건이 돌출했다. 청와대 정책실장과 23세 연하 여성 큐레이터의 부적절한 관계에 세상은 흥분했다. 막상 검찰의 변씨 기소 내용 중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된 건 개인 사찰 등에 특별교부세가 배정되도록 직권을 행사한 부분이었다.

 이명박 정부 5년차인 올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실세’와 ‘검은돈’이다. ‘대통령의 멘토’라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왕차관’으로 불린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파이시티 사건으로 구속 수감됐다. 그리고 어제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검 중수부에 소환됐다. 이들 외에도 수사를 받거나 구속된 대통령 측근, 친인척은 두 손에 꼽기 힘들다.

 권력 내부의 견제 시스템이 왜 작동을 멈춘 것일까. 청와대 민정수석실엔 대통령 측근 비리를 감시·예방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그간 수석 자리를 거쳐간 이들은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이었다. 이종찬. 대검 중수부장 출신인 그는 이 대통령의 대학(고려대) 후배로 2007년 대선에선 선대위 상임특보를 맡았다. 정동기. 대검 차장을 지낸 뒤 대선 직후 인수위 법무행정분과위 간사로 일했다. 권재진(현 법무부 장관). 이 대통령 형제와 같은 TK(대구·경북 지역) 출신으로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와 초등학교 선후배다.

 친인척 관리를 담당하는 민정1비서관을 보자.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검사 출신인 장용석 변호사가 임명됐지만 비서진 개편으로 4개월 만에 장다사로 비서관(현 총무기획관)으로 교체됐다. 장 비서관은 이 전 의원이 국회 부의장으로 있을 때 비서실장을 지내 ‘이상득계’로 통하던 인물이다. 지난해 6월 그의 후임으로 신학수 비서관이 임명됐다.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그는 대통령의 큰형 상은씨와 처남 고 김재정씨가 공동 대표로 있던 ㈜다스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검찰 몫인 민정2비서관은 TK 출신이거나 수석과 가깝다고 알려진 이들이었다. 지난 1월엔 김 여사 사촌오빠 등을 수사하던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장(권익환 검사)을 비서관에 배치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대통령을 직접 보필하는 민정수석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실무를 맡는 비서관들은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강골(强骨)을 앉혀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 집안과 어울리던 사람들을 민정1비서관 자리에 앉혔으니 친인척 관리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민정2비서관도 다른 비서관과 일절 어울리지 않고 사정(司正) 업무만 하는, 까칠한 친구를 시켰어야 해요.”

 당연히 시정돼야 할 문제도 넘어갔다. 대통령의 손위 동서 황태섭(74)씨는 2008년 제일저축은행 고문으로 위촉돼 매달 고문료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전 의원 역시 코오롱에서 수억원의 고문료를 받아왔다. 위법 여부를 떠나 “친인척이 사기업에서 고문료 받는 건 막아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직보했어야 할 사안이다.

 대통령 리더십이 와해될 위기에 놓인 현 상황의 책임은 상당 부분 민정수석실에 몸담았던 이들에게 있다. 힘의 논리에 밀렸을 수도 있지만 실세에 맞서겠다는 기개를 보였는지 의문이다. 청와대 비서관은 자연인 이명박이 아닌, 대통령 이명박을 위해 목을 걸어야 할 자리다. 정치권에선 “진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있었다면 이 전 의원이나 박 전 차관 같은 실세부터 뒷조사했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혹자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양이가 생선보다 절대적 강자라는 점에서 틀린 말이다. 오히려 생선(민정수석실)에게 고양이(실세)를 맡겼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생선에게 고양이를 맡긴 이유는 무엇인가. 고양이의 검은 발톱을 끊겠다는 의지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닌가. 이제 물음에 답해야 할 사람은 대통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