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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찾기' 사이트 찾게 만드는 풍토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인터넷 환경이 갖는 특징을 설명하면서 ‘PC방’과 ‘초고속 통신망’이 자주 사례로 올려진다. 그런데 과연 한국인만의 독특한 인터넷 문화가 있을까?

한국에서는 ‘아이러브스쿨 같은 과거 학생 시절의 동창 찾기 사이트가 엄청난 수의 회원을 끌어 모으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동창 사이트가 인기를 끌자 군대 전우 사이트니, 그밖의 과거의 조직과 연관이 있는 사람 찾기 사이트들도 우후죽순처럼 만들어지고 있다.

이처럼 사람 찾기 사이트가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일상생활 구조가 새로운 만남의 틀을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닐까? 특히 직장 생활을 하지 않는 결혼한 주부가 새로운 만남을 갖기란 매우 힘들다.

장바구니를 내팽개치고 카바레에서 춤 한 번 진하게 추면 범죄자로 취급되고 외간 남자와 차 한 잔하는 것도 이상한 눈초리로 보는 풍토에서 새로운 만남을 기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다.

이에 비해 인터넷 채팅은 무한대로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육체를 동반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염려를 놓아도 된다. 육체의 모험을 동반해야 하는 춤바람보다는 훨씬 자유롭고 안전하다. 그런데 생면부지의 사람과 채팅을 하기도 쉽지 않고 특정 관심사를 두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기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만남은 진입 벽은 낮지만 지속성은 매우 낮다는 특징을 갖는다. 그래서 과거에 알던 사람, 혹은 최소한의 조직적 공통성을 지녔던 동창 사이트를 찾는 것일 게다. 게다가 잊혀진 친구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흘러간 청춘에 대한 그리움이 일시적으로 이들 사이트의 인기를 끌어올렸으리라.

우리 사회에는 공개적인 사교의 공간이나 만남의 틀이 이상하리만치 드물다. 그리고 폐쇄적이다. 사회활동의 틀도 제한되어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큰 맘 먹고 새로운 연애를 시도할라치면 불륜이라는 올가미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 버린다.

이런 차에 인터넷은 새로운 만남을 현실에서 이루도록 도와준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그리 대단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 활용의 폭도 사방으로 열려 있다. 2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동창들과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주고받고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는 일은 물론 그 자체로 좋은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찜찜한 것은 이런 현상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우연보다 기왕에 만들어진 지연과 학연으로 회귀하는 복고적 만남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새로운 미지의 만남보다 다시 연줄의 과거로 회귀하는 것이 왠지 안타까움을 던져준다. 내일의 도구로 어제의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국의 지배 문화는 ''광장''보다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기방(妓房)에서 정치문화가 만들어지고 안가에서 정치음모가 이루어졌다. 숨기고 가리고 보여주고 끼리끼리만 작당하는 은폐의 문화는 독재와 탄압을 낳는다. 지배에 대항하는 대항문화는 골방의 문화가 아니라 광장의 문화다.

조선시대 말기에 싹튼 탈춤과 마당놀이는 봉건지배에 대항하는 민중 공동체의 활달한 문화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골방이 아니라 동네 마당에서 이루어졌다. 민중 공동체 문화의 축은 열림과 나눔의 정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의 활성화는 분명 가림과 숨김보다는 드러냄과 열림의 문화와 관련이 있다.

인터넷은 투명성을 통해 열린 만남을 촉진한다. 폐쇄적인 작당과 연줄망의 구조에 익숙한 집단에게 인터넷은 도전이자 위협이다. 은밀하게 자신들의 연줄망을 만들고 그를 통해 서로 끌고 밀어주던 오래 된 관습은 인터넷을 통해 투명성의 심판을 받게 된다.

전자 쇼핑몰의 경우 가격 비교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바가지 요금을 뒤집어씌우는 상술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투명한 가격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현실 세상의 나이와 직업과 용모와 성과 인종을 떠나 생각과 느낌만으로 상대를 만나는 상상과 새로운 정체성의 공간을 제공해준다.

현실의 갖가지 속박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운 자아를 새롭게 만들어보거나 통제 받지 않은 정체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엄청난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를 동반하지 않는 익명의 만남은 새로운 자아의 모험이자 도전일 수도 있지만 거짓과 사기와 꾸밈의 함정이기도 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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