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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리앗 '시스코' 꺾을 '다윗'으로 부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다산네트워크는 국산 범용 네트워크 장비를 본격 출시한 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시스코에 도전장을 내밀 정도로 급성장했다. ‘기술 빼면 시체’라는 철저한 연구개발(R&D) 정신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이다. 일정 잡기가 유난히 까다로운 벤처의 임원들. 연구소와 공장에 근무하는 임원들은 모이지 못했다. 벤처는 언제나 바쁘다. 전체 임직원 1백20명 가운데 서울 본사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시스코는 지금 보름달입니다. 지금까지는 전성기였지만, 이제 찼던 달이 기우는 일만 남았습니다.”

네트워크 장비 국산화의 선봉 기수인 다산인터네트의 남민우 대표(39)는 “올해 미국 본토 공략을 통해 시스코의 발목을 잡겠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올해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국내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높이면서 매출 1천억원 돌파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것. 지난 2월 6일 벌인 대규모의 킥오프 행사는 이런 공격 경영의 신호탄이었다.

다산인터네트는 인터넷 통신의 핵심 장비인 라우터, 스위치 및 각종 인터넷 접속장비(xDSL) 등을 개발, 생산하는 네트워크 장비 전문 벤처. 국내 네트워크 장비 시장의 90% 이상을 외국산이 점령하고 있고 더욱이 대부분을 세계적인 기업 시스코가 독점하고 있는 열악한 상황에서, 이 회사는 첫 제품 출시 후 불과 1년도 안 돼 감히 세계 시장과 골리앗 시스코를 상대로 도전장을 던질 수 있는 다윗 같은 존재로 급부상했다.

“보름달 시스코, 기우는 일만 남았다”

일정 잡기가 유난히 까다로운 벤처의 임원들. 연구소와 공장에 근무하는 임원들은 모이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이나 LG, 쌍용 등 대기업에서 장비를 생산하고는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 장비는 제품 주기가 매우 짧고 소량다품종 생산이기 때문에 대기업 체질에 맞지 않는 산업이다. 때문에 대기업 장비들은 대부분 일부 제품군에 한정돼 있다.

세계적으로 한 때 이름을 날렸던 쓰리콤(3Com) 역시 네트워크 분야에서만은 이미 저물어 가는 퇴역 장군이나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현재는 시스코와 노텔 정도만 업계 1인자 자리를 다투고 있는 상황. 10년 전 설립된 코리아레디시스템(Korea Ready System)이 전신(前身)인 이 회사는 98년부터 임베디드 시스템 개발 솔루션 사업을 시작으로 리얼타임오퍼레이팅시스템(RTOS) 및 임베디드 리눅스 기술, 통신 프로토콜 기술, 프로세서 보드 설계 기술 등 핵심 기술을 활용해 국산 네트워크 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국산 네트워크 장비를 본격 선보인 것은 작년 3월. 소형 라우터와 이더넷 스위치, 인터넷 서버 등 7종류에 달하는 장비를 동시에 출시했으며, 6월에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DS3(45Mbps) 중형 라우터를 비롯 L4+, 웹 스위치, E1 다중 라우터, 중대형 스위칭 라우터, SDSL 접속 시스템, 리모트 억세스 시스템(RAS) 등 모두 9종류의 신제품을 출시해 외국산 장비와의 본격 경쟁 체제를 갖추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

작년 6월에 코스닥에 상장했으며, 현재 주가는 4만5천원 수준. 99년 매출액 1백7억원, 경상이익 30억원에서 작년 실적은 매출 2백50억원, 경상이익 50억원으로 뛰었다. 올해는 매출을 최소 1천억원에서 최대 2천억원으로, 경상이익을 2백억원으로 4배 이상 성장시키겠다는 매우 공격적인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작년에 이미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면서 네트워크 장비가 상당히 보급된 상태가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남대표는 오히려 “내수 부문에선 다소 성장률이 낮아질 수 있지만 시장의 성장 규모 자체가 작아지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더불어 그는 “수출, 특히 미국 본토 공략을 통해 충분히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올해 세계적으로 IT 분야의 비용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 결국 가격 경쟁에서 승산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브랜드 가치도 많이 올라갔고, 회사가 알려지다 보니 협상력도 좋아졌다는 게 남대표로서는 가슴 뿌듯한 일이다.

은행 대출 3천만원으로 창업

벤처는 언제나 바쁘다. 전체 임직원 1백20명 가운데 서울 본사 직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처럼 최근 급성장하고 있는 회사지만 창업자인 남대표는 아직까지 ‘과거’를 쉽게 잊지 못한다. 6년간 근무했던 대기업 연구소를 나와(그는 대기업 연구소 정도의 울타리 안에서 근무하면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게 된다고 했다) 생계 위기를 느끼며 입사했던 작은 오퍼상 시절도 있었다.

남대표는 “월급쟁이가 웬만하면 회사에 정착하지 않겠느냐?”며 당시 회사 생활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갈등을 이야기로 풀어냈다(농담도 잘 하는 그가 스스로 “전혀 부드럽지 않다. 오히려 강성(强性) 이미지가 있다”고 말하면서 투명성과 합리성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겪은 일’이 많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엔지니어로서 보다 성취감 있는 일을 하고 싶었던 남대표는 결국 ‘대의명분이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창업의 길에 나선다. 봉천동 달동네의 다가구주택 전세 보증금 2천만원이 전 재산이었던 그가 은행에서 대출 받은 3천만원으로 창업을 한 것. 남대표는 “인생의 모든 일이 완벽한 판단과 결정에 의해 결정되지 않듯 다소 우연적인 상황이 엮였지만, 결국은 모든 게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91년 회사 설립 당시를 술회했다.

이 때 설립된 회사가 코리아레디시스템. 실리콘밸리로부터 RTOS라는 실시간 자동화기계를 들여와 판매하다 93년에 회사명을 다산기연으로 바꾸면서 ‘내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자동차 회사 연구원이었던 전문 경험을 살려 자동차 회사 엔진 테스트 장비를 개발한 것.

하지만 그도 말하듯이 “수입해 장사하는 것이 쉽고 돈도 더 잘 번다. 직접 개발해 판매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결국 IMF 이후 고전을 하다 98년 실리콘밸리의 파트너사로부터 용역을 의뢰 받아 12명의 직원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한 명 당 연봉은 1만불 수준. 남대표는 6개월만에 돌아왔지만 몇 명은 아직까지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업을 하고 있다.

남대표는 이 때가 모든 것의 전환점이었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남아 있던 회사로 어떤 사업을 다시 꾸릴 것인지 절실히 고민하던 중 인터넷 시대의 도래를 목격한 것. 이 때 벤치마킹한 회사가 시스코와 이베이다. 당시 벌었던 1백만달러를 종잣돈으로 시스코를 모델로 한 다산인터네트와 이베이를 모델로 한 (주)eSale을 설립한 것.

결국 99년 다산마이크로텍과 다산기연이 네트워크 전문 회사로 통합돼 새 출발한 다산인터네트는 라우터와 스위치 등의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순식간에 국내에선 일단 ‘최고’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른다. eSale은 인터넷경매 회사로, 데이콤과 합자한 뒤 6:4로 지분을 갖고 분사시켰다.

엔지니어 출신 사장의 기술로 승부를 보겠다는 신념에 걸맞게 다산인터네트는 전체 직원 1백20명 가운데 절반이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원래는 80% 가까이 기술개발 인력이었는데, 회사가 커가면서 마케팅을 보강하다보니 비율이 낮아졌다. 임원들도 엔지니어 출신들이 많다.

김영기 상무, 네트워크 영업의 베테랑

먼저, 네트워크 사업과 솔루션 사업을 관장하고 있는 김영기 상무(38). 그는 91년 3월 남대표가 코리아레디시스템을 설립할 때부터 동고동락했던 소위 ‘창단 멤버’다.

서울대 재학 시절부터 남대표와 같은 동아리에서 선후배로 친분을 쌓아왔고, 이를 계기로 사업에 동참했다.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자동화, 네트워크 장비 부문에서 10년 경력을 쌓은 영업 베테랑이며, 99년 매출 1백7억원을 이듬해에 2백41억원으로 끌어올린 일등공신.

그는 올해 매출 목표 1천억원 가운데 2/3를 네트워크 장비로 채우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편안하고 원만한 대인관계와 외모(?) 때문에 ‘금복주’란 별명을 갖고 있지만, 업무 결정 및 처리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에 근무하다 작년 하반기에 마케팅 전략을 강화하기 위해 영입된 윤태철 부사장(51)은 4/4분기 실적을 전 분기 대비 3배 정도 끌어올리는 성과를 낸 마케팅의 귀재. 본격적으로 세계 진출 원년을 맞으려는 올해 마케팅 강화를 위해 마케팅본부를 중심으로 영업기획팀, 기간통신사업부, 네트워크사업부, 해외사업부 등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유통 부문에서의 실무 경험과 오랜 기간 마케팅 부문에서의 교육 체계를 확립하는 데 몸 담아왔던 그는 마케팅 관련 저술만 20여 권이 넘는,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인물. 업무 기획에서의 치밀함과 진행 과정에서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직원들로부터의 별명은 ‘독일병정’이다.

고려대 전자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서 12년간 기술연구원으로 일하다 97년부터 다산에 합류한 이현수 이사(38)는 전문 기술집단의 핵심인 기술연구소(R&D Center)를 총괄하고 있는 너무나도 중요한 인물. 3개월마다 몇 개의 신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하는 연구소의 소장으로 연구원들의 맏형이자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다.

기술연구소 산하에는 라우터 그룹, 스위치 그룹 등 분화된 그룹들이 있으며, 3명의 서울대 박사 출신의 수석연구원을 중심으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출시된 신제품이 모두 20여 가지가 넘는 것도 이들 연구원들이 흘린 피땀의 결과.

올해는 상반기에 ATM라우터, L3스위치 등의 제품을 출시하고, 하반기에는 각종 억세스 장비들과 백본급 장비들을 출시할 목표를 세우고 있다. 38세라는 나이가 대기업과는 달리 벤처에선 이미 노장(?)이란 말을 듣지만, 회식 때마다 특유의 ‘아저씨 춤’을 보여준다고 한다.

이현수 이사는 R&D 총괄

남대표와 같은 학과 출신인 오세우 (주)다산 알앤디 이사(39)는 SK(주)에서 사업 기획 및 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이후 삼성 엔지니어링에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업무를 담당했었다. 엔지니어링 분야의 시장 개척기에 국산화에 도전한다는 것에 매료돼 다산에 합류한 그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회사 자본금 확보 및 외부 투자 유치 등의 업무까지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다재다능을 떨치고 있다. 올해에는 각종 특정 분석기 등의 개발 계획과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작년 다산이 코스닥 등록을 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순기 이사(42)는 고등기술연구소의 재무팀장으로 근무하다 99년 9월부터 합류했다. 그는 “다산의 업무 추진력은 어느 회사보다 강하고 빠르지만, 조직이 빠른 속도로 커나가면서 보다 체계적으로 조직을 보완해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벤처기업에서도 어느 정도 접목시켜 나름대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42세로 비교적 ‘어른’ 대접을 받는 나이지만, 노래방에 가면 최신 유행곡을 모조리 꿰고 있고 입주사 20층 구내 식당의 뮤직 비디오 주인공을 모두 알고 있는 신세대.

자동화사업부문(SI)을 총괄하고 있는 남윤우 상무(44)는 전북대 출신의 엔지니어로, 다산이 95년 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컴퓨터 기술을 응용해 자동화 장비 제조를 시작했을 때부터 합류한 SI사업 전문가. 불모지였던 국내의 자동화 장비 시장에 5년 이상 집중 주목하여 국산 자동화 장비를 개발해 소개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역시 자동화사업부문에 몸담고 있는 유춘열 이사(40)는 대우자동차에서 각종 시험 장비에 관한 업무를 14년 동안 해온 정통파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 그 역시 자동화 장비를 국산화한다는 대의의 목표가 맘에 들어 99년 10월에 선뜻 다산 합류를 결정했다.

그는 “올해는 그동안 벌여온 자동화 사업분야를 더욱 확장하는 한 해가 될 것이며, 작년보다 두 배 가까운 1백억원의 매출 목표를 실현하겠다”고 자신했다. 다산에 기술력이나 조직 적응력에서 뛰어난 인재가 많지만, 국내 업체이기 때문에 환경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다소 있다는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엔지니어로서의 자부심이 유달리 강한 남대표는 그동안 ‘기술 빼면 우리는 시체’라는 식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 원래 벤처는 그래야 한다는 것. 그런데 우리나라 벤처들은 원천 기술을 개발하기보다 마케팅에 치중해왔는데, 이는 완전히 미국식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면 기술은 모두 수준급인 상태에서 엇비슷하기 때문에 마케팅으로 살고 마케팅으로 망한다는 것.

A&D 같은 기업 운영 방식에 대해서도 “미국 상황에서 유행하는 것을 갖고 들여와 기술 본위가 돼야 할 벤처 물을 흐린다”는 강한 비판을 했다. 기술력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마케팅도 하고, 아이디어도 얘기할 것이라고 했다.

다산인터네트 주요 임원 프로필

성명

직급

나이

학력 및 경력

남민우

사장

39

서울대 기계공학과,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Korea Ready System 창업, 다산기연 창업, 다산 아메리카 설립

윤태철

부사장

51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삼성전자 네트워크 사업부 이사

김영기

상무

38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Korea Ready System 창업

이현수

이사

38

고려대 전자학과, 삼성전자 삼성종합기술원

오세우

이사

39

서울대 기계공학과, SK(주), 삼성엔지니어링

장순기

이사

42

방통대 경영학과, 대우중공업(주), 고등기술연구원

김기열

이사

39

서울대 인류학과, (주)대우

유춘열

이사

40

동양공전 기계설계학과, 대우자동차

남윤우

상무

44

전북대, (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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