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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스타열전 (54) - 척 노블락

중앙일보

입력

1998년 양키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뉴욕 양키스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 결정전 2차전, 연장 12회초 클리블랜드의 트래비스 프라이맨은 1루주자 엔리케 윌슨을 2루로 보내기 위해 희생번트를 댔다.

공은 1루쪽으로 굴렀고 양키스의 1루수 티노 마르티네스는 이 공을 잡기 위해 앞으로 달려 나왔다. 1루 베이스 커버는 당연히 2루수 척 노블락의 몫이었다.

이때 사건이 발생했다. 마르티네스의 송구가 프라이맨의 등에 맞으며 공이 우익수 얕은 쪽으로 비껴난 것이었다. 이 순간 1루 커버를 들어왔던 2루수 척 노블락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 발생했다. 심판에게 타자주자의 수비방해를 주장하느라 굴절된 공의 존재를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의 이 행동은 팀의 패배를 가져왔지만 양키스는 클리블랜드를 꺾으며 월드시리즈에 진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연속우승의 시동을 걸었다. 노블락은 그렇게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은 첫 해를 유명세(?) 속에서 마쳤다.

척 노블락, 이 텍사스 사나이가 메이저리그에 모습을 나타낸 것은 지난 1991년이었다. 당시 그의 가슴에는 트윈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1990년 미네소타 트윈스는 꼴찌를 차지했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취약한 2루 포지션에 있기도 했다. 알 뉴먼, 넬슨 리리아노, 프레드 맨리케의 3명이 이 포지션을 맡았었지만 그 누구도 톰 켈리 감독과 팬들의 입맛에 맡는 타격을 보여준 선수는 없었다. 이 때 텍사스 휴스턴 출신의 신출내기선수가 마치 혜성처럼 나타났다.

노블락은 입문 첫해 신인답지 않은 타격과 빠른 발로 팀 공격력의 물꼬를 트며 팬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오클랜드의 밥 웰치로부터 빅리그 첫 안타를 뽑아낸 그는 .281의 타율과 25개의 도루로 그해를 마치며 팀의 놀라운 변신(지구우승)을 이끌었다.

그의 활약은 포스트시즌에도 이어졌고 46타수 15안타의 뛰어난 타격을 보여주었다. 그의 활약은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밑거름이 되었으며 그는 그해 아메리칸리그 신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누렸다.

92년 그는 첫해보다 더 향상된 타격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해 기록한 34개의 도루는 트윈스 팀역사상 76년 이후 처음으로 나온 한시즌 30도루 이상의 기록이었다. 실책도 첫해의 18개에서 6개로 줄어 안정감있는 수비를 보여주었다.

1994년, 그는 마침내 자신의 진가를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해 처음으로 3할대 타자가 되었던 그는 거의 모든 공격부문에서 트윈스의 최고 타자가 됐다. 특히 그가 기록한 45개의 2루타는 선수노조의 파업이 없었다면 1931년 얼 웹이 기록했던 메이저리그 한시즌 신기록 67개에도 경신할 수 있을 정도로 아쉬움이 남는 기록이었다.

95년에도 여전히 타격은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었고 (타율 2위, 최다안타 3위, 도루 4위) 데뷔 처음으로 두자릿수의 홈런을 기록하며 장타력도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리그의 1번타자 중 출루율 1위를 기록했었던 그는 수비율에도 2루수 중 2위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최고 선수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등재했다. 실버슬러거를 수상한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이때까지의 활약은 96년을 위한 전초전에 불과했다. 노블락은 96년 타율, 타점, 안타, 홈런등에서 자신의 최고 기록을 수립했고 여전히 타율, 득점, 도루, 최다안타,출루율, 볼넷등은 리그 최고수준이었다. 최고의 리드오프였던 그는 8월 '트윈스 선수로 계속 남고 싶다'는 말과 함께 미네소타 구단과 5년간 평균 6백만달러의 계약을 마쳤다.

그해 그는 자신의 3번째 올스타에 선발되었고 140득점으로 지난 1977년 로드 커루가 작성했던 팀기록(128득점)을 갈아치웠으며 여전히 안정된 수비와 뛰어난 작전수행능력, 그리고 득점찬스에서의 집중력은 그가 최고의 선수임을 입증해 주었다.

1997년, 타격은 다소 하향세를 보였지만 62개의 도루로 팀 도루 기록을 갈아치웠고 156경기중 140경기에서 루에 진루하는 알찬 모습을 보였다. 47경기 연속 무실책을 기록했었던 그는 처음으로 아메리칸리그 골드 글러브를 수상하는 기쁨을 맛보았지만 그와 팀 관계는 극도로 불편해졌고 그는 1997년 끝으로 미네소타를 떠나가게 되었다.

1998년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월드시리즈 우승이 가능한 경쟁력있는 팀으로 소속을 옮기게 되었다. 양키스는 에릭 밀턴, 대니 모타, 크리스티안 구즈만, 브라이언 뷰케넌 등 4명의 유망주들과 현금 3백만달러를 미네소타에 지불하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노블락을 데려왔다. 그만큼 그의 1번타자로서의 재능과 수준급의 2루수비가 필요했었던 것이었다.

양키스의 첫해 그는 개인 최다인 17개의 홈런을 기록하며 19개 홈런의 데릭 지터와 함께 팀역사상 최초로 한시즌 동시에 15개이상의 홈런을 기록한 2루수와 유격수 콤비가 되었다. 그의 베이스러닝은 여전히 수준급이었고 18번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며 리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홈런을 양상한 것과는 반대로 그의 타율은 리그 데뷔 후 최저인 .260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시즌에서 그는 리그챔피언결정전에서의 어처구니없는 행동과는 달리 샌디에이고와의 월드시리즈 개막전 7회 3점포를 쏘는 등의 인상적인 플레이로 팀 우승에 기여했다.

1999년 그는 타격면에서는 예전의 감각을 찾았지만 지금껏 쌓아왔던 건실한 수비수라는 명성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타율은 2할9푼대를 기록했고 홈런도 뉴욕에서의 첫해보다 1개 늘어났지만 26개의 에러를 범하며 과연 저 선수가 매년 골드글러브 수상의 1순위에 꼽히던 선수인가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리드 오프히터로서 리그 출루율 4위를 기록했고 4월29일 텍사스와의 원정경기에서는 개인통산 21번째 리드오프 홈런을 인사이드 파크 홈런으로 기록하기도 하는 등 타격면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지만 그의 악송구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스티브 삭스 증후군을 의심케 만들었다.

작년시즌 그에게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기록들을 작성한 한해였지만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앞선 기로의 순간이었다. 데뷔 후 가장적은 출장경기수인 102경기 출장에 그쳤고 여전히 2루에서의 수비는 불안했다.

루이스 소호라는 대수비요원이 없었다면 그의 15개의 실책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 이런 사실을 간파한 조 토리 감독은 월드시리즈에서 그를 지명대타로 기용하는 용병술을 보여주었고 이는 또 한번 노블락에게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안겨다 주었다.

사람들은 척 노블락을 일컬어 전형적인 리드 오프 히터라고 말한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데는 그의 3할대에 육박하는 통산 타율과 3할8푼대의 출루율, 한시즌 40개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빠른발 그리고 뛰어난 베이스러닝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익수쪽으로 밀어칠 수 있는 타격재질은 그를 최고의 작전 수행능력을 보유한 선수로 평가받게 만들었다. 최근 들어 지나치게 잡아다니는 타격은 그의 타율을 까먹고 있지만 여전히 그는 리드오프 히터로서 타자로서 최고의 선수임에 틀림없다.

거기에 안정되고 완벽한 수비까지, 거의 완벽한 선수가 바로 그였다. 그러나, 99년부터 그는 반쪽짜리 선수가 되고 말았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악송구가 바로 그것이었다. 신체적으로 큰 결함이 없음을 감안할 때 문제는 자신감 회복일 것이다.

배트를 지면과 수평으로 들고 있는 그의 독특한 타격폼은 한번 보면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다. 또한 몸에 맞는 볼도 불사하는 그의 파이팅은 그만의 매력이다. 올시즌 그는 힘든 시험을 이겨내야 한다. 2루수로서 그리고 양키스선수로서 계속 생활하느냐는 올시즌의 활약여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척 노블락, 이제 30대 초반이 된 그에게 올시즌 가장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마도 불굴의 정신력일 것이다.

에드워드 찰스 노블락(Edward Charles Knoblauch)

- 1968년 7월 7일 생
- 175cm, 77kg
- 우투우타
- 연봉 : 600만달러(2000시즌)
- 소속팀 : 미네소타 트윈스(1991~1997), 뉴욕 양키스(1998~)
- 통산성적 : 1,415경기, 타율 .297, 83홈런, 549타점, 1,025득점 1,646안타 718볼넷 350도루
- 주요 경력 1991년 4월9일 메이저리그 데뷔,
1991년 아메리칸리그 신인상 수상,
실버슬러거 2회: 1995,1997
골드글러브 1회: 1997
올스타4회: 1992,1994,1996,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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