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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일의 글로벌 인사이트] 세계 속의 아시아와 한국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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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사공일
본사 고문·전 재무부 장관

그리스는 인구 1100만 명에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전체 GDP의 0.4%에도 못 미치는 소규모 경제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총선 결과에 따라 세계 주요 증시가 요동치게 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깊이 통합된 지구촌 경제 시대에 살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2008년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세계는 세계경제 통합의 깊이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2008년 초 미국의 베어스턴스, 영국의 노던락 은행 파산으로 본격화되기 시작한 금융위기를 많은 사람들은 미국과 영국에 국한된 또 하나의 큰 금융사고 정도로 생각했다.

 더욱이 영미식 금융자본주의를 앞세워 ‘잘나가던’ 미국과 영국을 못마땅히 여기던 일부 유럽인들은 남의 불운을 보고 고소하게 생각하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적 시각마저 가졌던 것 또한 사실이다.


[일러스트=강일구]

 물론 이러한 시각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불과 1개월여 만에 당시 유럽연합(EU) 의장국이었던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과 바호주 EU집행위원장은 워싱턴의 부시 대통령을 찾아 국제공조 방안을 논의했고, 더욱 긴밀한 국제공조를 위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출범시킨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이렇게 깊은 통합 단계에 들어선 지구촌 경제 시대에 상대적으로 대외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경제의 바람직한 성장전략은 무엇일까.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의 세계 속 비중은 서방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1820년 약 60%의 정점에서 점차 줄어들어 1950년경에 이르러서는 20% 이하로 떨어졌다. 그러나 1950년 이후 다시 아시아 경제는 일본을 필두로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 1970년대 이후 동남아 제국과 중국 및 인도 경제의 빠른 성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 결과 아시아 경제 비중은 꾸준히 상승해와 현재 약 30%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아시아의 재부상은 주로 미국과 유럽 등 선진 제국을 향한 수출 위주 대외지향적 성장전략의 성공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죽의 장막을 젖히고 시장경제 체제로의 편입을 노린 지 불과 30여 년 만에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재부상할 수 있는 굳건한 터전을 마련한 중국의 경우가 이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아시아 경제가 앞으로도 빠른 성장세를 유지하여 2050년에는 세계경제의 5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으로 최근에 내다봤다. 단지 지금까지의 수출 위주 성장전략을 내수와 수출의 균형에 기초한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과 아시아 제국이 추진한 수출 주도적 성장전략의 성공은 미국의 민간 소비(GDP의 70%를 넘는)가 뒷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높은 실업과 주택 버블의 붕괴, 그리고 과소비마저 조장해온 과거 금융여건의 변화에 따라 미국의 민간 소비는 지난 4년 이상 계속해서 그 성장세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현재 유럽이 겪고 있는 위기는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유로존은 정치통합은 물론이려니와 재정통합과 은행 연합 없이 이룩된 화폐통합에 따른 태생적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유럽은 이러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유럽을 이끌어 나갈 강력한 정치 지도력마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에 있다. 따라서 유럽은 앞으로 계속해서 근본적인 문제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수많은 회의를 거치며 임시방편적 처방에만 급급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유럽경제의 침체는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중국은 이미 제12차 5개년발전계획(2011∼2015)에 국내 소비 촉진을 통한 내수 증진 방안을 포함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우선 중국의 성장전략 전환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국 내수시장 거점 확보를 위한 노력 강화와 함께 현재 중국을 통해 미국과 유럽으로 다시 수출되는 대중국 수출의 상당 부분을 수출지역 다변화 노력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현재 지나치게 높은 중국경제 의존도를 낮추는 데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이와 아울러 취업유발 효과가 높은 각종 서비스 분야, 즉 보건·의료·관광·물류·전시컨벤션 등의 수출산업화 노력을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과감한 규제개혁과 함께 적어도 제조업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제도적 인프라 마련이 시급하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과 함께 아시아 지역 국가들은 크게 향상된 경제적 위상에 걸맞게 지구촌 경제 전체의 지속성장을 위해 필요한 공공재(global public goods), 예를 들면 보호무역주의 퇴치, 세계 금융·외환 시장의 안정, 기후변화와 지구 환경 보존 등을 위한 국제공조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 나가야 한다.

 아울러 아시아 지역 차원에서의 경제협력과 정책공조 체제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특히 기존의 다자화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CMIM)를 아시아 지역 통화기금으로 발전시켜 나갈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사공일 <중앙일보 고문·전 재무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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