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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B '오락 도구' 안 되게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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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이동 중이나 차량 안에서 디지털방송 및 다양한 정보 서비스 이용이 가능한 디지털미디어방송(DMB)이 과거의 이동전화에 이어 세상을 또 한번 변화시킬 뉴미디어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고 있다. '내 손안의 TV'를 기치로 DMB가 확산되면 언제 어디서나 초고화질.고음질의 디지털방송이나 음악 등과 같은 다양한 콘텐트를 쉽고 값싸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초고속통신망.이동전화에 이어 또 한 차례의 한국식 정보기술(IT) 혁명이 눈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미래학자 맥루한의 언급대로 우리는 다양한 디지털 매체의 발전으로 가상의 공간뿐 아니라 이동 공간이라는 새로운 인간 감각의 공간을 발견한 것은 아닐까.

이 같은 미디어 혁명은 과거 집안 거실에서 옹기종기 단란하게 텔레비전을 보던 세대 간 대화의 장 대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모바일 미디어 시대를 열어 줄 것이다. 특히 1020세대 같은 젊은이들은 가정에서 수동적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것에서 탈피해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DMB를 통해 또래들과 그들만의 독특한 하위 문화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세대는 디지털 유목민처럼 한 곳에 안주하지 않고, 이리저리 현실과 가상공간을 배회하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미래의 변화를 꿈꾸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DMB가 우리에게 보여줄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일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DMB 수요는 지상파 방송 재전송 또는 극히 오락적인 소수 장르에만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 인해 DMB가 단순 오락이나 흥밋거리 위주의 정보와 콘텐트를 순환적으로 재생산하는 구조를 유지한다면 국가 전략적 차원에서 도입되고 있는 뉴미디어 분야에서도 상업적 오락문화가 확대.재생산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 1020세대를 포함한 이용자 대부분은 과거 통신회사들이 제공하던 초고속 동영상 서비스에서처럼 상업화된 마케팅의 표적이 되거나 성인 콘텐트를 소비하는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DMB라는 신규 사업에 투자하면서 새로운 수익원에 골몰하는 여러 사업자 중 그 누구도 새로운 매체의 교육적.문화적 활용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DMB의 소프트웨어 구성도 지나친 상업적 오락물 일색보다는 교육적.문화적 측면을 일정 정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다른 매체에서도 넘쳐나는 상업적 오락문화를 DMB에서도 그대로 복제하거나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이용자들을 위한 게 아니라 사업자를 위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뉴미디어라는 껍데기를 만들어 놓고 과거의 상업적.오락적 콘텐트에만 매달리다 보면 정작 새로운 미디어의 중요한 사회적.문화적.교육적 역할은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DMB의 상업화 또는 오락화에만 몰입하는 현재의 새로운 매체 도입에 대한 논의 구조는 앞으로 보다 문화적 가치와 콘텐트의 다양성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보완돼야 할 것이다.

전범수 한양대 신방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