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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서 정말 K팝듣나 궁금해 클럽갔더니…충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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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매달린 오색 풍선과 건물 기둥을 휘감은 초록색 바구니 7000개. 템스강을 지나는 영국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달 초부터 영국 런던의 복합문화예술공간 사우스뱅크센터 야외에 설치된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은 이불·서도호 등과 함께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한국 아티스트 중 하나인 최정화의 작품이다. 일간지 가디언은 12일자에 “최정화의 작품은 사우스뱅크센터의 회색 기둥을 이국적인 식물로 바꿔놓았다”고 보도했다.

최정화의 전시는 다음 달 27일 개막하는 2012 런던 올림픽 한국문화축제 ‘오색찬란’의 하나다. ‘오색찬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총괄하지만 실무는 주영 한국문화원(원장 원용기)이 맡았다. 주영 한국문화원이 2006년 개원 이후 한국 대중음악과 영화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K컬처’ 확산에 앞장섰던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총기획자는 전혜정(44·사진) 사업총괄팀장. 올해로 7회째를 맞는 런던 한국영화제를 성공리에 정착시켜 국내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이름이다. 지난해 런던 한국영화제는 영화진흥위원회가 지원하는 35개 해외영화제 평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당시 개막식 공연을 한 샤이니를 보겠다는 영국 팬들 때문에 극장 100여 곳의 예매시스템이 마비되기도 했다. 올림픽 개막을 한 달여 앞둔 21일 전 팀장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오색찬란’은 ‘K컬처’라는 브랜드를 내세웠다. 어떻게 꾸며지나.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장영주), 소프라노 조수미, 소리꾼 이자람이 사우스뱅크 센터에서 공연한다. 디자이너 이상봉은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한식리셉션을 겸한 패션쇼를 연다. ‘2012년’에 맞춰 임권택·이준익·이명세 등 감독 12명의 작품을 상영하고, 감독이 영국을 방문하는 ‘12감독전’도 연초부터 런던 시내 극장에서 매달 진행 중이다. 미술·공연·영화·문학·패션 등 전방위로 ‘K컬처’를 부각하려고 한다.”

-‘오색찬란’이 국내에서 준비한 기존 올림픽 문화행사와 다른 점은.
“한국문화원엔 그간 한류 행사를 치르면서 영국 문화계 내에 네트워크가 상당히 구축돼 있다. 한국 문화를 효과적으로 알릴 방법을 어느 정도 안다고 자신한다. 한국에서 아무리 우수한 공연단체가 와도 좋은 공연장을 잡지 못해 고배를 마시는 모습을 과거에 많이 봤다. ‘오색찬란’은 사우스뱅크센터, 빅토리아 앨버트(V&A) 박물관, 템스시 축제사무국 등 3개 기관과 협력한다. 사우스뱅크센터와 V&A는 영국 사람이면 누구나 알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가령 이상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한글이 들어간 찻잔은 패션쇼를 계기로 V&A 아트숍에 들어간다. 이보다 더 좋은 한국 홍보가 어디 있겠나.”

-그게 어떻게 가능했나.
“사우스뱅크센터 내 헤이워드갤러리나 V&A 등은 일정이 꽉 차 있기로 유명한 곳이다. 우린 2년 전부터 실무자들을 만나 설득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는 런던 올림픽 때 한국 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하면 효과가 정말 클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한국영화제 등을 하면서 쌓은 네트워크가 도움이 됐다. 한국 문화에 대한 높아진 관심, 한국 작가들의 우수함도 힘이 됐다. 헤이워드갤러리 디렉터에게 ‘한국 작가 중 누구 작품을 보고 싶나’고 묻자 바로 ‘최정화’라고 답하더라.”

-사라 장, 조수미는 유명하지만 국악그룹 공명이나 이자람 등 영국인에겐 지명도가 낮은 이들도 있는데.
“사라 장은 1년에 한두 번 런던에 올 때마다 5000석이 금방 매진되는 아티스트다. 그런 사라 장을 한국인으로 각인시켜 ‘K클래식’이라는 브랜드를 심어 주고 싶었다. 판소리는 사실 영국인들에게 낯설다. 하지만 ‘2003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이미 안숙선 명창이 초청받았다’는 식으로 V&A를 설득했다.”

-한국영화제를 7년째 해 오고 있다. 무엇을 보여 주려 했나.
“우리의 원칙은 현지인들이 보고 싶은 한국 문화를 보여 주자는 거다. 동포보다는 영국 토박이에 초점을 맞춘다. 설문조사를 해 보니 영국인들이 접하고 싶어하는 게 영화와 대중음악, 음식 순이었다. 우리는 한국 문화 하면 전통적인 것부터 떠올리기 마련인데, 여기선 동시대 문화에 관심이 많다. 셋 다 언어장벽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됐나.
“원래는 무용을 했다. 8세 때 한국무용을 시작해 선화예고와 이화여대 무용과를 나왔다. 대학원 시절 김매자 교수가 스승이었다. 석사 마친 뒤 대학 강의를 하다가 제대로 공부를 해 보려고 두 아이를 데리고 유학을 왔다. 워릭대 석사 과정에서 문화정책 및 경영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워낙 공연 기획하는 걸 좋아하긴 했다. 워릭대 공부를 마치고 우연히 주영 한국대사관 문화자문을 하게 됐는데 그게 한국문화원과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2006년 개원 준비를 하기 위해 런던시내 부지만 100여 군데 보러 다닌 것 같다.”

-영국 내 한류는 어느 정도인가.
“이제 막 상륙했다고 보면 된다. 불씨가 지펴졌으니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영화와 대중음악은 젊은이들 사이엔 꽤 퍼진 것 같다. 가령 박찬욱 감독은 영화 매니어나 영화산업 종사자들에겐 이미 너무나 유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몰라도 박 감독은 아는구나 싶을 정도다. 몇 년 전 한국영화제 지방 순회상영을 하러 옥스퍼드와 워릭으로 갔는데, 박 감독이 왔었다. 아일랜드에서 온 청년이 그를 보자 대뜸 배낭에서 장도리를 꺼냈다. 순간 내가 몸을 날려 막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아찔했는데 알고 보니 박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열성 팬이었다. 주연 최민식이 장도리를 흔들던 장면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K팝은 말할 것도 없다. 이번에 이상봉 패션쇼를 하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담당자도 ‘내 여동생이 K팝 팬’이라고 하더라. 덕분에 일이 더 쉽게 풀렸다.”

-영국 내 한류 열기를 어디서 느꼈나.
“2010년 청와대 관계자가 문화원을 방문했다. 그때 K팝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다. 런던에 정말 K팝을 듣는 사람들이 있나 궁금해졌다. K팝을 틀어 준다는 클럽을 수소문해 직원들과 갔다. 빅뱅과 2NE1 등의 뮤직비디오를 틀어 놓고 ‘박수 쳐~’ 같은 가사를 따라 부르면서 사람들이 몸동작을 하는데 정말 충격이 컸다. 이 자생적인 열기를 북돋울 방법이 없을까 싶었다. K팝 틀어 주는 콜라텍을 문화원 안에서 해 봤다. 유리창에 검은 천 치고 조명 몇 개 달고 새우깡과 콜라를 준비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알렸을 뿐인데 줄 선 아이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호응이 컸다.”

-K컬처의 인기가 아직은 대중음악이나 영화에만 국한된 건 아닌지.
“그래서 올해 2월부터 석 달간은 ‘K팝 아카데미’를 열었다. 영국 청소년 30명을 선발해 한국 문화 강좌를 했다. 무료인데 조건이 있었다. 강의를 들을 때마다 후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거였다. 그래야 한국 문화에 대한 영문 자료가 늘어날 테니까. 떡볶이나 쑥떡 같은 한국 음식도 만들어 보게 하고 대사관저에 초청해 온돌방에서 절하는 법 같은 걸 가르쳤다. 대사님이 쑥뜸 뜨는 법도 시연했다. K팝 기획기사를 썼던 일간지 가디언 여기자가 와서 강의도 했다. 그 기자는 에픽하이의 ‘ONE’을 듣고 K팝 팬이 됐다고 하더라. 빅뱅·소녀시대·비스트 등 K팝을 즐겨듣는다.”

-K컬처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이어 갈 수 있을까.
“우리 같은 기관을 비롯해 각 분야에서 네트워킹과 더불어 지속적인 붐업을 해야 한다. ‘오색찬란’의 효과는 예산 15억원의 몇 배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장기적으론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시켰으면 한다. 영국에서도 한국학 전공자나 한국으로 유학 가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우리 문화 콘텐트, 충분히 경쟁력 있다. 우리처럼 한국 문화를 알리는 사람들에겐 그게 큰 힘이다. 언젠간 K컬처가 전 세계의 중심에 서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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