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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자산·건강 불리 … 한국 베이비부머 은퇴는 경착륙”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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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호 03면

일본 푸르덴트 퇴직연금연구소 하타 조지(奏穰治) 이사장(오른쪽)과 강창희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이 19일 서울 수하동 미래에셋빌딩 내 강 소장 사무실에서 노인복지와 은퇴에 관해 대담했다. 하타 이사장은 노인 표를 의식한 정치권의 복지 확대정책을 경계하라고 경고했다. 그는 국내 전문가를 상대로 연금 강연을 하기 위해 방한했다. 조용철 기자

100세 장수시대. 누구나 행복한, 적어도 불행하지 않은 노년을 꿈꾸지만 쉽지 않다. 개인적 대비와 사회적 배려가 함께하지 않으면 장수는 나와 우리 사회에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노인복지를 늘리고 있지만 필연적으로 재원(財源)과 포퓰리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한·일 은퇴문제 전문가 대담 하타 조지 vs 강창희

우리 노인 인구 증가속도는 위험 수준이다. 베이비붐 세대는 작년부터 55세 직장 정년퇴직 층에 편입되고 있다. 23일 현재 남한 인구가 50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10년 11%에서 2026년 20%에 달하는 초고령사회가 된다. ‘질서 있는 노인복지’를 고민할 때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사회에 들어섰고, 단카이(團塊) 베이비붐 세대(1947~49년생)의 은퇴 붐을 겪은 일본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두 나라의 대표적 은퇴 문제 전문가인 일본 푸르덴트 퇴직연금연구소 하타 조지(奏穰治·66) 이사장과 강창희(65)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장(부회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노인복지의 적절한 방향, 성공적 은퇴 생활과 노후 설계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는 독자 이해를 위한 설명)
  
노인복지, 예산과 균형 이뤄야
▶강창희 부회장=한국은 작년부터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생)가 본격적으로 직장 퇴직을 시작하면서 노인복지가 당면 이슈로 떠올랐다. 정치권도 대선을 의식해 노인복지 확대 정책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월 9만원 선인 기초노령연금 액수를 늘리는 내용 등이다. 뒷받침할 재원이 있느냐는 우려와 함께 노인복지 포퓰리즘이란 비판도 나온다.

▶하타 조지 이사장=노인복지 확대 비용 논란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요즘 소비세 인상이 큰 이슈다. 5%인 소비세율을 10%로 높이려는 것이다. 노년층 지원 등 복지비용 증가에 따른 예산 확보가 큰 이유 중 하나다.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소비세율 인상으로 확보되는 돈은 연금·의료·개호(노인 요양·간병)와 저출산 대책 등 사회보장에 대부분 쓰인다. 소비세율 인상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찬반이 갈려 실제 인상될지는 모르겠으나 복지비용 부담에 대한 반발이 적잖다.

▶강창희=일본의 노인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하타=세계 최고 수준일 것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일본은 ‘노인에게 천국, 청년에겐 지옥’이란 말이 있다. 청년들은 돈 벌기 힘든데, 노인들은 복지혜택 받으며 잘산다는 뜻이다. 올해 국가 일반회계 예산 90.3조 엔(약 1300조원) 가운데 사회보장 예산이 26.3조 엔으로 가장 비중이 크다. 일본 노인복지는 크게 개호·의료·기초연금 지원 등이다. 일부 극빈층 노인에 대한 지원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지방마다 다르지만 오사카의 극빈층 노인 중에는 월 20만 엔(약 280만원)까지 지원받기도 한다. 생활보조금 7만9500엔, 주택보조금 4만2000엔에 의료비 지원까지 합치면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 전체로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보조금을 받는 극빈층이 1.5% 정도여서 아직 큰 문제는 아니지만 가난한 노년층이 늘어나면 납세자들의 불만이 더 커질 것이다. (※일본 복지지출은 일반·특별 회계 예산 등을 모두 합쳐 연간 110조 엔에 이른다. 이 중 70%가 고령층에 지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복지재원 상당 부분은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다.)

▶강창희=한국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 한국도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하타=노인 부양에 대한 젊은 층의 반발로 마냥 노인복지를 늘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노인 표가 문제다. 노년층은 어느 세대보다 투표에 적극적이다. 그러니 그들의 표를 염두에 두고 노인복지를 확대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다음 세대다. 30~40대가 노인이 됐을 때는 이들을 지원할 돈이 부족해지기 쉽다. 한국의 경우 복지와 예산이 균형을 이루면서 젊은 사람들이 노인 부양에 대해 반발하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누구나 다 노인이 되니 노인복지에 무조건 반대만 하지 말자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65세 이상 중 “건강” 日 65%, 韓 43%
▶강창희=안정적 노후생활을 위해 나라뿐 아니라 개인 차원의 준비도 중요하다. 노후를 위협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장수·건강·자녀와 편중된 자산구조, 인플레이션 등이다. 오래 사는 것은 일단 축복 같지만 생활비가 문제다. 은퇴 후 급격히 건강을 잃는 경우도 많다. 한국은 개인 자산에서 부동산과 금융자산의 비율이 8대 2다. 요즘처럼 부동산 불패 신화가 깨지고 거래마저 잘 안 될 때는 은퇴자들이 부동산을 처분해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타=일본도 1990년 이후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가 많다. 하지만 한국 정도는 아닌 듯하다. 일본은 부동산 경기가 좋았을 때도 부동산 대 금융자산 비중이 5대 5였다. 지금은 부동산 비중이 40% 선이다. 또 25~40년 만기의 장기 대출을 평생에 걸쳐 조금씩 갚는다. 만일 한국의 부동산 가격이 더 떨어지면 그 충격은 일본보다 더 심각할 것이다.

노인건강도 한국이 일본보다 취약한 것으로 안다. 일본 내각 조사부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나는 건강하다”고 답한 비율이 일본은 65%인데 한국은 43%였다. 일본의 은퇴 준비나 미래 예측이 한국보다 나은 것 같다. 일본은 직장 정년이 비교적 잘 지켜진다.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들었다. 일본의 은퇴가 연착륙이라면 한국의 은퇴는 경착륙이 되기 쉽다는 이야기다.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도 은퇴 후 건강에 분명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강창희=일본 사람을 ‘회사 인간’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더한 것 같다. 일평생 ‘일·일·일’ 하며 산다. 그러다 어느 날 준비도 안 된 채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더 허탈해하고 쉽사리 건강을 잃는다. 평생 직장인으로 살아서 회사를 떠난 뒤엔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은퇴 후에는 돈이 중요하지만 친구·사회활동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하타=일본·한국 사람 할 것 없이 노후는 외롭다. 일본인 가운데 ‘은퇴 후 가깝게 지낼 친구가 있다’는 비율이 4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 미국·유럽의 은퇴자들에 비해 사회봉사활동도 덜한다. ‘은퇴 후 사회공헌활동을 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일본 52%, 한국 70%였다. 미국이나 스웨덴은 30% 정도다. 돈을 적게 받더라도 은퇴 후 사회공헌활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대지진은 일본인으로 하여금 사회공헌활동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됐다. 비극적인 지진이 공교롭게 인간관계 복원에 도움을 준 것이다. 또한 남에게 너무 의지하지 말자. 은퇴 후 행복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부인에게 너무 의존하면 안 된다. 스스로 음식도 만들고 청소도 하자. 자립인(自立人)이 돼야 한다.

일본 가계금융 자산 2경원, 수익 시원찮아
▶강창희=자녀 리스크도 만만치 않다.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을 자녀 교육에 퍼붓는다. 그 때문에 노후자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 우리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퇴직자의 60%가 노후생활비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했는데, 큰 원인은 자녀 교육비였다. 요즘에 학교 졸업하고 취직해서도 부모에게 얹혀사는 경우가 적잖다.

▶하타=자녀 교육에 돈 많이 들어가는 것은 일본도 비슷하다. 하지만 한국 정도는 아닌 듯싶다. 한국·일본은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는 걸 의무라 생각하고, 부모의 학비 부담을 당연시한다. 미국은 학생이 융자받아 공부하고 졸업 후 벌어서 갚는다. 한국·일본도 미국처럼 교육 수혜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강창희=일본은 금리가 낮고, 자본시장도 선진국치고는 발달하지 않아 은퇴자금 운용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타=은퇴로 근로소득이 줄면 자산운용 소득이 늘어야 하는데,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 운용은 성공적이라고 보기 힘들다. 일본 가계 금융자산은 한국 돈으로 2경원 정도다. 대부분 금리 0.02% 안팎의 초저금리 예금에 들어가 있다. 일본은 디플레이션(물가하락) 경제라 저금리 불만이 크진 않다. 하지만 잘 운용해 연 5% 수익만 내도 1000조원이다. 일본은 금융회사든 개인이든 자산을 적극 운용해 고수익을 내본 경험이 별로 없다. 투자 관련 교육을 잘 하지 못했다.

▶강창희=투자 교육은 어떤 걸 말하나.

▶하타=재테크 교육이 아니라 젊을 때부터 생애 설계(라이프 플랜)를 하고 그걸 준비하는 것이다. 예전엔 회사에 의지하면 됐지만 요즘은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은퇴 후 노후준비에서 한국은 일본보다 뒤진 듯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개인적으로 노후를 열심히 준비하고 금융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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