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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복제 방지 신기술이 소비자 권리 빼앗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 항소법원 재판부는 온라인상의 무분별한 음악파일 공유는 중단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6천2백만명의 냅스터 이용자들이 정말 잘못한 것일까. 그 정도 규모의 소비자 집단이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시장이다.

대형 미디어 업체들이 냅스터 사이트를 폐쇄하려는 동시에 수많은 곡 중에서 선택해 간편하게 내려받을 수 있는 냅스터式 기술에 사용료를 부과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내놓기 위해 안달인 것도 그 때문이다.

체리 레인 디지털社의 짐 그리핀은 “미디어 업계의 사업방식은 ‘타잔式’이다. 그들은 다음 덩굴(사업모델)을 꽉 붙잡을 때까지 이전 덩굴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덩굴’은 냅스터 소송건보다 훨씬 해결하기 힘든 무수한 저작권 문제들을 양산할지도 모른다. 이들 업계의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최종 방어선은 소송이 아니다.

디지털 복제 방지 신기술로 디지털 파일 복제 신기술을 막는다는 계획이다. 이미 시행 중인 것도 있다. 시중의 영화 DVD에는 무단복제 방지 암호체계가 입력돼 있다. 그밖의 다른 기술들도 현재 준비단계에 있다.

냅스터는 음악 파일을 CD에 복사하는 것을 방지하고 이용자들의 불법적인 행동을 모니터하기 위한 이른바 디지털 저작권 관리기술을 발표했다. 대형 미디어 업체들은 이 시스템이 완벽한 복제음반을 만들 수 있는 CD 라이터와 전세계적인 음악 공유를 가능하게 한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의 현상을 유지하는 수준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장치는 여러 측면에서 사실상 소비자들의 권리를 앗아간다. 미디어 업계의 의도대로 이뤄진다면 음악 공유가 불법화될 뿐 아니라 非상업용 혹은 교육용 복제 등 음악·영화 애호가들이 당연하게 간주하는 것까지도 차단될 것이다.

더욱이 미디어 업계는 의회를 설득해 음악·영화를 개인용도나 순수 목적으로 사용하는 등 저작권 침해와는 무관할지라도 아무도 그 장치에 손대지 못하게 했다. 1998년 통과된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은 불법복제용 도구를 배포하거나 관련 정보를 출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합법적 목적으로 저작물을 복제할 필요가 있다면 어쩔 것인가. 또 저작권 보호 기간이 만료돼 누구든 이용할 수 있게 됐을 경우는 어쩌란 말인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캘리포니아大의 저작권 전문가 패밀라 새뮤얼슨 교수는 “법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 정당한 용도와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많은 곤란한 경우들은 간과됐다”고 말했다.

이런 제한조치들은 현재 법원에서 심리 중이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2600 매거진은 16세의 한 노르웨이 해커가 영화 DVD의 암호시스템을 해독했다는 기사(저작권을 침해할 목적이 아니라 리눅스 사용자들이 컴퓨터상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를 내보낸 후 美 영화협회(MPAA)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지방법원 판사는 밀레니엄 저작권법이 정당한 용도까지 불법화한다는 주장을 기각했고 현재 항소 중이다.

美 전자개척자재단의 리 티엔은 궁극적으로는 콘텐츠 업체들이 밀레니엄 저작권법을 등에 업고 모든 형태의 지적 재산에 대해 이용할 때마다 사용료를 내도록 밀어붙일 것으로 본다.

그는 음반이나 서적을 사서 원할 때마다 사용하는 대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사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날이 올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 저작권자들이 디지털 비디오 플레이어에서 빨리감기를 통해 광고를 건너뛰는 것처럼 저작권 침해 요소가 없는 다른 소비자들의 행동마저 제한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한편 콘텐츠 회사들은 저작권 침해를 저지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사용료를 거둬들일 수 있는 이 장치 덕택에 호기를 맞고 있다. 지난주 TTR라는 한 이스라엘 회사는 음반회사들이 디지털 복제 방지용 음반을 제작할 수 있는 ‘세이프 오디오’라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가령 세이프 오디오를 이용해 제작된 제니퍼 로페스의 신보를 사서 음반을 복사하거나 컴퓨터 안에 저장하는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게 되면 로페스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끔찍한 전파방해 소음에 뒤덮여 들리지 않게 된다.

TTR의 마크 토케이어는 美 소비자들이 스스로 음악을 복제할 권리를 갖고 있을지 모르지만 소니와 AOL 타임워너 같은 미디어 업체가 소비자들이 그런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수단을 제공할 법적 의무는 없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권리를 회복하려고 하면 밀레니엄 저작권법에 의해 저지될 것이다. 토케이어는 현재 TTR는 모든 주요 미디어 업체들과 협상 중이며 연말께 ‘세이프 오디오’ 방식으로 제작된 음반이 판매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베르텔스만 같은 대형 미디어 업체에 휘둘릴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일까. 결국 수많은 저작물을 원하면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소위 ‘천상의 주크박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끝없이 동전을 집어 넣어야 하고 우리가 누려오던 기존의 권리들은 사라지는 것인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패밀라 새뮤얼슨은 법·기술·업계의 탐욕이 단합해 정당한 사용마저 위협한다면 국민들이 자신들의 의지를 정책입안자들에게 알려 법을 수정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6천2백만 유권자들의 생각이 틀렸을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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