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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시조새가 날아갔다 종교와 정치도 말썽인데 이번엔 종교와 교육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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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서울시내를 다니다 보면 가끔 확성기를 장착한 차량을 만난다. 차체 사방에 ‘예수 천국, 불신 지옥’ 같은 구호가 붙어있고, 믿음을 권유하는 고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주변에 존경할 만한 기독교인이 많긴 하지만, 이런 광경을 마주칠 때마다 뜨악해진다. 지하철에서도 열변 토하며 전도하는 이들을 종종 마주친다. 열정과 사명감이 놀랍기는 하지만 한편으론 측은하다(물론 그들은 내가 측은할 것이다).

 거기까지다. 서로 측은해하면서 각자 생각대로 사는 것이다. 나로서는 확성기 소리와 안면방해가 좀 불편해도 참아줄 수 있다. 너무 심하면 항의하거나 제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참아가며 사는 게 세상이다. 조지 윈스턴을 기독교 일각에서 뉴에이지 음악이라며 배척하더라도 내가 듣는 것까지 막는 건 아니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긴다. 배우 톰 크루즈, 존 트래볼타가 사이언톨로지라는 신흥종교의 신도라는 소식을 들으면, 걔들 재밌네 정도로 받아들인다. 영화 ‘아바타’ ‘다빈치 코드’에 대해 교황청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대해 보수 기독교계가 발끈할 때도 그쪽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레이디 가가 공연을 아예 없애려 한다든가, 봉은사라는 다른 종교 경내에 들어가 ‘땅 밟기’ 같은 의식을 벌이는 건 보아 넘기기 어렵다. 독선과 권리 침해, 나아가 폭력의 조짐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건 불교든 이슬람교든 부두교든 마찬가지다.

 기독교 관련 단체인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회(교진추)의 청원에 따라 고교 과학교과서에 진화론의 증거로 나오는 시조새 서술이 삭제 또는 수정됐다고 한다. 말의 진화 과정을 설명한 대목도 곧 삭제될 예정이다. 시조새·말 서술은 주류 학계에서 이미 논란이 많았던 만큼 삭제한다 해도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 편을 들었다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교진추의 목적은 제대로 된 진화론이 아닌 ‘교과서 진화론 제거’(교진추 홈페이지)에 있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고시한 과학 교육과정은 엄연히 ‘다양한 생물 종의 진화를 설명하는 진화론의 핵심을 서술’하고 ‘진화의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특정 종교의 입김에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영향을 받는다면 큰 문제다. 이러니 학계 일각에서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발언에 빗대 “이번엔 교과서 봉헌이냐”는 반발이 나오는 것이다.

 관련 학계에서는 상당히 심각한 사태로 여기고 있다. 서울대 장대익(진화학) 교수는 “창조론자의 주장에 의해 교과서가 바뀐 것은 세계에서 처음일 것”이라고 말한다. 6개 학회가 속한 생물과학협회 등이 대책을 논의 중이고, 곧 성명서가 발표될 예정이다. 종교와 정치 간 조율도 어려운데 이번엔 종교와 교육이 뒤엉켰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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