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물고 물리는 '천적 3인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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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영훈 9단이 최철한 9단을 2 대 0으로 리드하고 있는 가운데 25일 기성전 도전기 3국이 한국기원에서 열린다.

기세를 탄 박영훈이 한판을 더 이기면 타이틀을 따낸다. '독사'라는 별명과 함께 최강 이창호 9단을 연파하며 욱일승천하던 최철한은 절체절명의 막판에 몰렸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이창호라는 인물을 사이에 두고 삼자를 비교해보면 박영훈은 최철한을 이기기 힘든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승부란 묘한 것이어서 박영훈과 최철한이 맞서자 예상 외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 최철한이 응씨배 결승전 패배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데다 박영훈의 기량이 좋아졌다는 분석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이들 삼자 사이엔 아무래도 기풍, 성격에 따른 승부의 천적관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박영훈 VS 이창호=박영훈은 이창호 9단에게 1승7패로 밀리고 있다. 이 정도의 전적이라면 거의 일방적이라 할 수 있다.

박영훈은 국내대회에서 한 번, 세계대회에서는 두 번이나 우승했다. 그런 박영훈이 지난해 이창호와 LG정유배 결승에서 만나자 3 대 0으로 완패하고 말았다.

약간 엷은 기풍의 박영훈은 그 방면의 전문가인 이창호에겐 아직 힘들다는 얘기가 그래서 나왔다. 소위 천적관계라는 것이다.

?최철한 VS 이창호=최철한은 이창호에게 10승8패의 우위를 보이고 있다. 15세 때 프로 초년병 시절의 4연패를 뺀다면 승률은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특히 지난해 3월부터 현재까지 1년간의 전적은 8승2패다.

최철한은 국내 기전에서 다섯 번 우승했고 세계대회 우승은 없다. 그런데 국내 5회 우승 중 이창호를 꺾은 것이 세 번이다. 세 번 만나 세 번 모두 이겼으니 타이틀전에선 100% 승률이다. 이창호에겐 최철한이 천적이라는 게 드러난다. 최철한은 두텁다. 이창호 9단은 엷음에는 강하지만 두터움엔 약간 힘겨워하는 구석이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참 특수해서 지금도 해석이 분분하다.

?박영훈 VS 최철한=소띠 동갑내기인 두 기사는 거의 호각의 전적을 보여준다. 기성전 도전기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최철한의 4승3패 우세. 이후 박영훈이 2연승하여 거꾸로 5승4패로 뒤집었지만 이 정도면 여전히 호각세다.

두 사람은 팽팽하지만 이창호 9단을 개입시키면 느낌이 크게 달라진다. 지금껏 이창호의 후계자로 이세돌 9단과 함께 최철한 9단이 거론돼 왔다. 박영훈은 논외였다. 이창호란 인물에게 일방적으로 져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영훈이 최철한을 꺾고 기성 타이틀을 따내면 상황은 또 크게 변할 것이다. 이창호가 국수전에서 최철한에게 지고 최철한은 응씨배에서 창하오에게 졌다.

그 여파가 이제 기성전까지 밀려오고 있고 바둑계 판도마저 요동치고 있다. 이창호 9단은 "승부는 당일의 기세"라고 말했다. 모든 해석을 떠나 그게 정답인지도 모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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