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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시장 인텔 독점깨고 삼성·삼보 우리편 만들겠다”

중앙일보

입력

박치만 지사장은 자신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판단과 확신이 강했기 때문에 에너지가 솟아나는 듯했다. 특히 CPU시장이 거대 공룡기업에 의해 독점되는 국내 시장의 문제점을 강하게 지적했다.

자리이타(自利利他). 우행호시(牛行虎視).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하나여서 남도 이롭고 나도 이롭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다.’‘소처럼 행동하고 범처럼 보라.’ 부처와 보조국사 지눌이 한 말이다. 불교에서 쓰이는 이 말을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정도(正道)’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최인호의 소설 ‘상도(商道)’의 줄거리도 줄곧 되뇐다.

영업부장 1년만에 지사장으로 전격 발탁된 AMD 코리아의 박치만 지사장(42).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전형적인 영업 맨이었는데, 실제 만나보니 화제도 다양하고 유머가 넘쳤다. 외모도 훨씬 부드러웠다.

이렇게 말하면 그런 것들까지도 포함해 모든 게 영업력의 일환이겠거니 단정짓겠지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물론 그는 타고난 영업 맨이긴 하다.

삼성전자에서 PC 부문 영업부장을 하면서 탁월한 능력을 과시했었고, AMD에 입사해서도 99년의 3% 시장점유율을 2000년에 6%로 두 배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올해도 꼭 두 배 높인 12%로 목표치를 잡았다. 게다가 관리자인 지사장이 됐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보다도 몇 배 더 높은 목표치를 설정해놓고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과 영업을 하겠다며 스스로를 다잡고 있다. 작년에는 3백65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했다. 추석과 설 연휴 때도 외국출장 가서 일을 봤다.

‘워커홀릭’ 아닐까 의심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걷는 기쁨을 누릴 줄 알기 때문이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근면하게 일 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개발자들이 관리자가 되면 개발 업무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현실에서, 성취감을 잃지 않기 위해 영업의 길을 택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영업 맨으로서 그의 ‘성공’엔 10년여의 연구개발(R&D) 경력이 밑거름이 되었다.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한독연구소와 삼성전자에서 각각 5년씩 네트워크와 PC 등의 연구개발에 전념했던 과거가 IT 제품 영업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자양분이 돼 주었던 것.

특히 하드웨어 전문가로서의 판단력은 그가 ‘잘 나가는’ 삼성전자에서 거대 공룡 인텔에 맞서는 젊고 야심찬 CPU 생산업체 AMD로 전직하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7세대 CPU인 애슬론의 성능이 경쟁사 제품보다 낫다는 전문가로서의 확신 때문이었다.

성능과 가격에서 경쟁력 있는 AMD 제품의 약점은 인지도다. 업계 사람들이나 PC를 조립할 줄 아는 파워 유저 정도라면 AMD의 제품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AMD가 뭐 하는 회사인지도 모른다. 각종 벤치마크에서 제품력을 인정받고, 외국에서 CPU 업체로 잘 알려져 있는 상황과는 다르다.

때문에 올해의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 우선 대기업 수출용 PC에 AMD CPU를 보다 많이 탑재하는 것에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델 컴퓨터를 제외한 세계 Top 10의 PC 메이커들에게 이미 AMD 제품이 납품되고 있어, 수출에 목말라 있는 삼성, 삼보 등 대형 PC 메이커들의 수출 판로를 뚫어주면서 AMD 제품 장착을 유도할 생각이다. 이렇게 되면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내수의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본다.

또 하나의 전략은 앞으로 빅뱅 시기를 맞을 PC 유통 채널에 대한 그의 확신에서 출발한다. 세계적으로도 PC 시장이 죽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고, 99년 2백20만대 수준이었던 우리나라 PC 시장 규모는 작년 3백30만 대에서 올해 3백만 대 수준으로 역 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 같은 PC 불황은 기존 유통 채널들을 다양하게 분화시키면서 보급형 PC와 중저가 PC의 수요 증대로 이어질 것이다. 대기업이 기존의 대리점식 유통 채널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신 유통 채널과 대기업의 매개자 역할을 하겠다는 것. 물론 중견 메이커들과의 제휴를 통해 대기업 메이커들을 압박하는 작전도 함께 구사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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