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요즘 은행들 정부가 보증하는 ‘안전빵’에만 대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요즘 ‘순수장기고정금리대출’에 힘을 쏟고 있다. 장기 고정금리로 고객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를 대출 채권화 한 뒤 주택금융공사를 통해 시장에 파는 식(유동화)으로 위험을 최소화한 ‘적격대출’이다. 최근 신규 주택담보대출의 90%가 이 상품이다.

담보여신상품팀 김문주 이사는 “출시 2개월 전부터 직원 연수를 시키며 공을 들였다”며 “전국 1만여 부동산에 홍보자료를 보내고 기존 변동금리 고객에게도 안내 문자를 보내며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교동에 위치한 한 경영컨설팅 업체는 최근 운영자금 1억원을 빌리려고 신용보증기금 온라인 대출장터에 등록했다가 깜짝 놀랐다. 신보 보증서를 제시하자 회사 인근 은행 열 곳에서 서로 “대출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 업체는 가장 낮은 금리(연 4.3%)를 제시한 기업은행 신촌점에서 돈을 빌렸다. 이 회사 문모(33) 대표는 “예전에는 ‘담보가 없다’ ‘사업 경력이 짧다’며 쌀쌀맞던 은행이 보증서 한 장에 이렇게 돌변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경기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떼일 염려가 적은 ‘안전빵’ 대출로 몰려들고 있다.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3분의 2를 넘어서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또 정부의 보증을 받는 보증부 대출에 ‘올인’하는가 하면 주금공의 유동화로 안정성을 더욱 높인 적격대출도 활성화하고 있다.

 17일 주금공에 따르면 올 3월 출시한 적격대출은 불과 100여 일 만에 대출 실적이 1조3000억원을 넘어섰다. 가파른 증가세에 주금공 관계자들까지 놀랄 정도다. 적격대출은 은행엔 ‘양날의 칼’이다. 장점은 절대 부도날 우려가 없다는 것. 고객에게 빌려준 주택담보대출을 주금공에 넘기면 주금공은 이 대출을 주택저당증권(MBS) 형태로 만들어 시장에 판다. 은행 입장에선 최장 35년에 달하는 장기 고정금리 대출 재원을 마련하는 부담을 덜고,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도 없앨 수 있다. 단점은 손에 쥐는 수익이 준다는 것. 대출 채권을 팔아버려 예대 마진을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대출 관리 수수료 등을 받는다. 보통 1%대인 예대 마진에 비해 수수료 수입은 0.75~0.85% 수준으로 낮다.

 그럼에도 이미 적격대출 상품을 내놓은 SC·씨티은행 외에 이달 중 농협·하나·기업은행이 상품을 출시하는 등 은행들은 적격대출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농협은행 상품개발부 이복견 차장은 “담보로 잡은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 대출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게 은행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채무자 입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싼 금리로 장기 대출을 이용하는 이점이 있다. 주금공 정하원 시장유동화기획단장은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전체 주택담보 대출에서 적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에 달한다”며 “시장 상황에 민감한 단기 변동금리 위주의 국내 주택금융 시장이 장기 고정금리 위주로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보증부 대출 역시 증가 추세가 뚜렷하다. 올 들어 5월까지 양대 보증기관인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서 나간 보증 대출 규모는 12조6578억원(신규·증액)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5% 늘었다. 보증부 대출은 돈을 빌린 기업이 파산하더라도 보증비율(85~90%)을 제외한 금액만 은행이 메우면 돼 안전하다. 신보 기업지원부 이인수 팀장은 “과거 신용대출에 큰 부담을 갖지 않던 은행들이 요즘은 ‘보증서 없이는 대출을 못 한다’고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보가 지난해 1월 개설한 온라인 대출 장터에도 은행들이 북적인다. 올 4월 대출장터를 통한 신용보증 대출은 누적 2조원을 돌파했다. 이는 기업이 보증대출을 신청하면 이를 본 은행이 조건에 맞는 금리 조건을 제시하는 역경매 방식으로 운용된다. 시중은행 전 지점의 60%가 장터에 등록한 것으로 신보는 파악하고 있다. 이 팀장은 “일부 업체는 한 번에 16개 은행으로부터 대출 제안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보증기관과 제휴를 맺는 은행도 늘고 있다. 산업은행은 최근 신용보증재단중앙회와 업무 협약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산은 관계자는 “대기업 대출에 주력해 온 터라 자영업자의 신용을 평가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보증부 대출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연세대 김정식 상경대학장은 “경기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면서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돈 굴릴 곳을 찾는 은행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질 전망”이라며 “서민들의 돈 빌리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금융 중산층의 숨통을 틔울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