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테러 장비 납품 65억 몰아준 경찰 간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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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폭발물 처리 로봇과 같은 대(對)테러 장비 납품업자에게 계약을 몰아주고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현직 경찰관이 적발됐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4일 경찰이 사용하는 대테러 장비 납품업체에 수의계약을 따게 해주는 등 편의를 제공하고 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로 서울 양천경찰서 박모(49) 경감과 초등학교 동창인 공범 이모(49·사업)씨를 구속했다고 밝혔다. 박 경감은 2005년 5월부터 2011년 1월까지 경찰청 대테러센터에서 장비 계약 업무를 담당했다. 돈을 건넨 C납품업체 대표 조모(48)씨와 총괄본부장 이모(41)씨 등은 뇌물공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또 조씨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한국공항공사 4급 직원 조모(44)씨와 해양경찰청 박모(46) 경감도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양천서 박 경감은 경찰청 대테러센터에 근무할 때 알게 된 조씨가 2005년 3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던 G사 주식을 매입했다. 이후 주가가 하락하자 초등학교 동창 이씨를 조씨에게 보내 “투자 손실을 봤으니 메워 달라”며 금품을 요구했다. 박 경감에게 밉보이면 장비 납품이 어려워질 것으로 판단한 조씨는 G사 직원 백모(32·여)씨 명의의 계좌를 통해 박 경감에게 2006년 4월부터 2009년 9월까지 42차례에 걸쳐 총 1억870만원을 건넸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은 조씨가 박 경감 등에게 뇌물을 주고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경찰의 대테러 장비 수의계약 180건 가운데 83건(46%)을 따냈다고 밝혔다. 83건의 장비 계약은 65억300만원 상당이다.

 한편 경찰은 군 정보사령부 등 다른 국가기관에도 조씨가 금품 로비를 한 혐의를 포착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일단 입찰 관련 내부 정보를 알선해 주고 2600만원을 받은 전직 육군 대령 조모(61)씨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고, 장비 심사를 맡았던 대학교수 등도 로비자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테러 장비는 군·경찰 등 소수의 국가기관에만 납품할 수 있는데 해외에서 장비를 수입하는 ‘에이전트’는 난립한 상황”이라며 “전직 국가기관 간부 등을 브로커로 고용해 다른 경쟁업체가 진입할 수 없도록 수의계약을 체결하는 등 비리가 관행화된 상태”라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대테러 장비(counter-terrorism tools)=폭발물 처리 로봇, X선 촬영기 등 군·경찰·공항 등이 테러를 막기 위해 구비하는 장비. 대부분 미국 콜트·레밍턴 등 외국 제조업체에서 수입해 오는 고가의 장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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