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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 무릎꿇린 조엘, 베르텔스만에 '입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클린턴 행정부 시절 법무부의 독점방지 관련 업무를 5년간 총지휘했던 조엘 클라인은 독점기업들의 탐욕스러운 영토확장에 쐐기를 박는 해결사로 그 화려한 명성을 쌓았다. 미국의 방위산업체이자 거대 전신회사인 스프린트(Sprint)와 월드컴(WorldCom)의 합병을 저지했으며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社와 정면으로 맞선 끝에 기세등등하던 MS의 무릎을 꿇렸다.

지난해 4월 토머스 펜필드 잭슨 연방지법 판사가 MS에 대해 반독점법 위반 판결을 내린 직후 클라인은 “이번 선고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정보화 시대의 기본원칙을 제시해 준 기념비적 결정”이라는 짤막한 환영성명을 발표했었다.

이 코멘트는 앞으로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발목을 잡는 장애요소가 될지 모른다. 법무부 반독점국장을 역임한 그가 지난주 독일의 거대 미디어 그룹 베르텔스만의 미국 내 영토확장을 위한 최고책임자로 기용됐기 때문이다. 워싱턴 정가의 소식통이자 다양한 정계 인맥과 연줄이 있는 그는 금년 54세로 미국 내 기업경쟁법에 관한 전문가다.

베르텔스만 내에서 클라인의 주요 역할은 미국 시장에선 무명이나 다름없는 이 독일 기업을 AOL 타임 워너 또는 바이어컴(Viacom) 같은 미디어업계의 거인들과 어깨를 겨룰 수 있도록 미국 시장에서 독자적 입지를 확보하는 일이다.

‘미스터 해결사’로서 베르텔스만에 합류하는 클라인은 위탁관리자로서, 그리고 무대 뒤의 관료주의자로서의 역할이 민감하게 충돌하는 교차로에 서 있다. 독점기업을 분할하기 위해 싸워 왔지만 한 번도 그런 기업에서 일해 본 적이 없는 전직 법무부 관료로서는 그야말로 아이러니컬한 변신이 아닐 수 없다.

그를 위해 새로 만든 ‘베르텔스만 Inc.’의 회장 겸 CEO로서 클라인은 앞으로 베르텔스만의 미국 내 부동산, 금융 및 회계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가장 핵심적인 임무는 베르텔스만의 지배자 토마스 미델호프에게 미국 내 기업인수와 그에 따른 법률전략을 자문해 주는 일이다.

120억 달러의 막강한 현금 동원 능력을 가진 베르텔스만은 미국 미디어 기업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울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 현재 베르텔스만의 미국 내 소유 기업으로는 잡지발행사 그루너앤자르 USA, 출판기업 랜덤하우스, 음악사업 부문의 BMG, 온라인 음반 소매업체 CD나우(CDNow) 등이며 그밖에 반스앤노블닷컴의 지분 40%를 거머쥐고 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클라인에게 최우선적으로 주어진 일은 BMG와 그의 강력한 라이벌인 EMI와의 원만한 합병을 위한 장애물 제거다. 만일 아직 협상 중인 양사가 통합하면 세계 최대의 음반 그룹이 탄생하게 되지만 이미 이같은 합병 움직임은 유럽 반독점 당국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가 발을 디디게 될 또다른 영토는 전면 개조될 냅스터의 파일 공유 서비스를 재진수(再進水)시키는 것이다.

이미 베르텔스만은 자회사 BMG로 하여금 저작권 보상소송에 가담하도록 했다가 소송취하를 결정한 데 이어 5000만 달러로 추산되는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신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냅스터와 공조체제를 유지해 왔다.

냅스터의 재진수를 떠맡은 클라인은 과거 MS 반독점법 위반 소송 때 자신의 오른팔이던 데이비드 보이스와 재회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당시 법정에서 MS를 향해 맹공을 퍼부으며 클라인 못지 않은 전국적 인물로 떠올랐던 보이스는 냅스터측의 변호사로 냅스터 서비스 폐쇄 판결을 내렸던 연방법원의 1심 선고에 항소해 놓은 상태다.

클라인이 추진해야 할 또다른 분야는 베르텔스만의 미국 TV 시장 진출이다. 지금까지 베르텔스만은 ‘외국기업은 미국 TV 방송사의 지분을 25% 이상 소유할 수 없다’는 美 국내법 조항에 걸려 수차례의 노력이 매번 수포로 돌아갔었다.

윤리적 측면에서 클라인이 지난해 9월 미국 법무부 반독점 국장직을 사임한 지 6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서 과거 법무부 동료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펼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 대상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FTC는 점차 노골적으로 변해 가는 베르텔스만의 공격적인 미국 시장 진입 움직임을 감시하는 기관으로 무엇보다 클라인에 대해 호의적이다. FTC 위원장인 로버트 피토프스키는 “클라인은 내가 여지껏 상대했던 최고의 법률가들 중 한 명이다. 베르텔스만이 그를 낚아챈 것은 대단한 행운”이라고 클라인을 높이 평가했다.

93년 그는 연방대법원 판사로 지명된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의 인준을 막후에서 성공적으로 조정했으며, 당시 보여준 능력이 백악관의 눈에 띄어 빈센트 포스터의 자살로 공석 중이던 백악관 법무담당 부보좌관으로 스카우트됐다. 95년 법무부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에 반독점국장으로 승진, 굵직굵직한 반독점 위반 사례들을 총괄하다가 지난해 9월 “새롭게 도전할 대상을 찾고 싶다”면서 전격 사임했다.

진보주의자들은 그를 자유경쟁의 쇠퇴와 대기업에 의한 기업의 소수화 및 집중화에 맞서기엔 너무 나약한 온건파라고 비난했지만, 신경제 기업의 상징이자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인 MS를 상대로 부하직원들에게는 재량권을 전폭적으로 부여하고 자신은 전문분야인 전략수립 및 실행에 충실, 재판을 승리로 이끌면서 그에 대한 비판을 일거에 봉쇄시켜 버렸다.

클라인과 미델호프가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클린턴의 절친한 친구 버논 조던이 주최한 워싱턴의 한 파티 석상에서였다. 이후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미델호프가 워싱턴 D. C.를 방문할 때마다 함께 어울렸다. 99년엔 미델호프의 46번째 생일파티가 열린 워싱턴 동부의 한 고급식당에 초대될 정도로 막역한 사이가 됐다.

베르텔스만의 웹사이트는 “우리는 중앙으로부터 다각적으로 분산된 모든 비즈니스 활동에 있어 사업적 주도권을 쟁취하는 데 항상 노력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조엘 클라인은 지적인 율사(律師)임을 입증했고 이제는 철저한 비즈니스맨임을 증명해야 할 때다.

by Andrew Morse and Keith Pe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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