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품보다 인간을 먼저 생각하라

중앙일보

입력

자동차를 빌리긴 빌렸는데, 헤드라이트나 앞 유리창 와이퍼를 어떻게 켜는지 몰라 자동차 계기판에 붙어있는 사물함을 뒤적거리며 매뉴얼을 찾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불량한 인터페이스 설계 때문에 피해를 본 극단적인 사례다.

휴대폰으로 전화번호를 어떻게 저장하고, 불러오는지 파악하기 위해 15분 이상 걸린다면, 역시 좋지 않은 인터페이스 설계 때문에 피해를 본 경우다.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제작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에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컴퓨터에 대고 소리를 질렀던 적이 있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은 인터페이스 설계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다.

최근 설계자들과 엔지니어들이 실제로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그들이 만들 제품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들이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사용하게 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실제로 고려하게 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요는 당신이 설계하는 제품을 사용할 사람들을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마치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말해주듯이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그런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돈 노먼, 앨런 쿠퍼, 제이콥 닐슨 같은 사용 편리성 전문가들의 저술을 읽어보면, 가장 선의의 설계자와 엔지니어들조차도 그들이 제품을 만들 때, 사용자, 즉 일반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종종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프로그램하기 어려운 것은 VCR만이 아니다. 전화에 있는 다자간 회의 통화 기능을 이용해보거나, 혹은 누군가를 다른 회선에 연결시키려다가 끊어진 것에 대해 미리 사과한 적이 있는가?

노먼의 ''보이지 않는 컴퓨터(The Invisible Computer)'' 또는 쿠퍼의 ''피수용자가 보호시설을 운영한다(The Inmates are Running the Asylum)''를 읽어보거나, 방문자들의 환영을 받는 웹사이트 제작법을 제시한 닐슨의 유용한 웹사이트인 www.useit.com을 살펴보면, 사용자를 염두에 둔 상태에서 제품 및 서비스들이 설계돼야 한다는 생각이 어째서 설계자들에게 극단적인 개념으로 남아있는지 의아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흘러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일반적으로 의견 합치가 이뤄지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사용이 불편하거나 전화 작동이 복잡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제품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용자, 즉 필자가 위에서 언급했던 일반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그럴 이유가 없다.

필자는 어느 누구 못지 않게 잘못된 설계 때문에 실망한다. 필자는 때때로 사람이 어떤 것에 점점 익숙해질수록 그 결함을 발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런 기업들은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이나,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전에 그들의 웹사이트를 실험하는 사람들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가?

얼마 전 인터랙티브 위크(Interactive Week)의 편집장인 롭 픽스머는 2001년을 ''인터페이스 아키텍트''의 해로 선언했다. 그는 많은 기업이 제품을 이해하고 있는, ''인터페이스 아키텍트''라는 직함을 가진 경영진의 모습이 좀더 사용자에게 친근한 모습이 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롭이 지적한대로 이것이야말로 발전의 징조다.

물론, 발전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수년에 걸쳐 ''더 팩터(duh factor)''라고 불러온 것과 관련된 만큼 인터페이스와는 관계가 없는 웹사이트 및 프로그램 문제들을 확인하고 해결하는 사람들이 인터페이스 아키텍처인지는 잘 모르겠다.

더 팩터는 한 때 많은 기업 웹사이트들이 주소, 전화번호 같은 회사에 관한 가장 기초적인 정보와 간단한 사업 요약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칭하기 위해 필자가 처음으로 사용했던 용어다.

롭의 경우, 더 팩터는 MS 아웃룩이 워드를 e-메일 편집기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면서도 e-메일을 워드 문서로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만연해 있다고 본다.

필자에게 더 팩터는 아웃룩 같은 뻔한 제품뿐 아니라 좀더 교묘하긴 하지만 여전히 뻔한 제품들 모두가 될 수 있다. 여기 적절한 사례가 있다.

최근 필자는 딸과 함께 웹을 서핑하면서 우리가 태양계의 중심부에 있는 태양에 관해 찾을 수 있는 정보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기로 결정했다. 캘리포니아에는 약간의 전력 문제가 있는 터라 우리는 태양의 에너지 생산량에 관한 사실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필자가 인터넷에 있는 구글(Google)에서 뭘 할 수 있을지 보고 있는데, 필자의 딸은 www.sun.com이라고 입력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딸아이의 주장은 바로 그 주소가 논리적으로 가야할 곳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논리적으로 보이긴 한다. 특히 9살 짜리 어린아이에게는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테크 산업에 대해 아는 체 하는 사람으로서 www.sun.com에서 태양과 관련된 것을 찾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필자의 딸이 그 주에 조니 애플시드와 온갖 종류의 사과에 대해 공부할 때도 우리는 www.apple.com에서 맥킨토시(먹는 사과)와 관련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썬과 애플의 항변으로 넘어가기 전에, 필자는 애플과 썬이 그들이 이름을 공유하고 있는 대상물, 즉 태양과 사과에 대한 정보를 찾게 될 것이라고 오인한 채 그들의 웹사이트를 방문한 웹 여행객에게 재미있는 사실을 제공하는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먼저 인정해야겠다.

그러나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아주 똑똑한 직원 중 한 사람이 누군가 생각했던 이런 시나리오를 웹사이트 모임에서 제안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일일까?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호의적인 목적으로,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 우연히 태양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썬의 웹사이트에 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는 우리 홈페이지에 태양 모양의 아이콘을 만들어, 태양에 관한 몇 가지 사실들을 제공하는 페이지로 가는 링크를 제공해야 한다."

거기다 이런 메모를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태양계의 중심인 또 다른 썬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썬의 전직원들의 호의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사람들은 이것을 훌륭한 PR 방식이라고 여길 것이다. 돈 노먼은 그런 생각을 ''인간 중심적인 설계''라고 표현한다. 필자와 필자의 딸에게 그런 링크는, 웹사이트가 기기에서 나온 것이긴 하지만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 회사의 누군가가 파악하고 있다는 신호가 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