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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미니 하우스가 집값 끌어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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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주택 매매 수요가 줄어들면 전셋값은 뛴다. 집값이 떨어질 것으로 보이면 내 집 마련을 미루고 전세를 찾는 수요자가 많아서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이 0.4% 떨어졌는데 전셋값은 13.4%나 오른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파트값 하락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전셋값도 동반 하락하고 있다. 중앙일보조인스랜드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과 분당·일산 등 수도권 1기 신도시 아파트값은 0.28%, 0.66% 각각 떨어졌다. 서울은 지난해 3월, 신도시는 같은 해 10월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걷고 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상승곡선을 그리던 전셋값은 4월부터 하락세가 뚜렷하다. 서울 전셋값은 4월 0.09% 떨어지더니 지난달 0.05% 하락했다. 신도시 전셋값도 지난달 0.06% 떨어져 2009년 3월(-0.48%) 이후 3년2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매매와 전세의 동반 약세는 주택공급이 많기 때문이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손재영 교수는 “주택시장 전망이 어둡고 주택공급도 과잉인 침체 국면에는 매매값과 전셋값이 같이 내려가는 경향이 생긴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올 1~4월 서울·수도권에서 준공된 아파트는 3만3383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4만1601가구)보다 8200여 가구 줄었다. 하지만 도시형생활주택·연립주택 등을 포함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올 1~4월 서울·수도권에 지어진 전체 주택은 13만7422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11만7722가구)보다 2만여 가구 많다. 서울에만도 지난해(3만9068가구)보다 9600여 가구 늘어났다.

 특히 올해에는 서울·수도권에서 오피스텔도 1만여 실 입주될 예정이다. 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팀장은 “소형 아파트 대체재 역할을 상당 부분 하고 있는 도시형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공급이 전세 수요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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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로 공급과잉이 심한 곳도 있다. 김포·고양·남양주 등에는 입주가 몰리면서 전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까지 일부 나타날 정도다. 김포 한강신도시엔 지난해부터 이미 1만1000여 가구가 입주했는데 입주율은 이제 20%를 갓 넘은 수준이다. 여기에 올 상반기 4300여 가구가 새로 입주한다.

 반면 전세 수요는 위축됐다. 우선 매년 지방 등에서 몰리던 ‘학군 수요’가 올해는 거의 사라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서울 학생수는 2000년 158만8000여 명이었으나 2011년 121만9000여 명으로 23% 감소했다. 강남구의 순전입학생수(전입학생수-전출학생수)는 지난해 1458명으로 200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올해는 감소폭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강남·양천·노원구 등 전통적인 학군 명문 지역 전셋값이 많이 떨어졌다. 개포동 개포주공 우정공인 김상열 사장은 “올봄에는 학교 때문에 전세를 찾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주택산업연구원 노희순 책임연구원은 최근 낸 ‘학군수요와 전세가격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봄 이사철인 1~4월 전셋값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학군 수요 움직임이 올해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며 “교육정책 변화 및 쉬운 수능 등으로 학군 수요가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올해는 윤달의 영향으로 신혼부부 수요도 줄었다. 4월 21일부터 5월 20일까지 음력 3월이 한 번 더 반복되는 윤달은 액운이 있는 달로 여겨져 예부터 이 기간에 예식을 피하는 문화가 있다. 예식장 등 결혼업체 모임인 한국웨딩연합회 김현정 팀장은 “윤달을 피해 결혼식을 잡기 때문에 대부분 예식장의 올 4~5월 예식은 예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고 전했다.

 전셋값이 급등한 데 따른 부담감도 일부 작용했다. 우리은행 안명숙 부동산팀장은 “올해 전세 재계약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2년 전 전셋값을 많이 높여 계약을 했다”며 “매매가격은 떨어졌고 가계 실질임금이 제자리걸음인데 더 올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전세 수요자들의 구매력이 많이 위축됐다. 2006~2008년 6.4%였던 실질소득 증가율은 2009~2011년 2.6%로 크게 낮아졌다. 현대경제연구소 박덕배 연구위원은 “국민들의 총 소비에서 전·월세 등 주거비 부담이 차지하는 비율이 9년 만에 최고치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전셋값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매매·전셋값 동반 하락세는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유럽 재정위기, 가계 부채 문제 등에 따른 경제의 불확실성이 계속돼 주택 매수세가 위축됐다. 전세 시세 회복도 기대하기 힘들다. 전세 수요가 주택 공급에 비해 특별히 늘어날 상황이 아니어서다. 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 서울지역 뉴타운 재개발 사업 추진 방향의 윤곽이 드러나는 하반기까지 매매와 전세 동반 침체 현상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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