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몸값경쟁 뜨거운 장외경기

중앙일보

입력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 협상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협상에는 단순한 '숫자 놀음' 만 있는 게 아니다.

테이블에 앉은 선수와 구단 관계자는 때로는 논리 싸움으로, 혹은 치밀한 수치를 들이대며 상대방을 제압하려 한다.

특히 기(氣)싸움이 만만치 않다. 선수들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몸값을 끌어올리려 한다.

또 한켠에선 돈을 넘어선 자존심과 명분, 실익이 한데 어우러지는 한판 승부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 현장을 보면….

◇ 가계부형〓미국 플로리다 전지훈련장에서 한창 연봉 줄다리기를 병행하고 있는 현대 구단은 전준호가 협상 테이블에 들고온 서류 뭉치에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전준호의 정규 시즌 매경기 기록뿐 아니라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플레이에 대한 평가, 팀내 리더로서 역할 등이 꼼꼼히 적혀 있었다.

자체 자료로 선제 공격을 하려던 구단으로선 오히려 기선을 빼앗긴 셈이다. 현대 관계자는 "자신의 성적을 정확히 분석함은 물론 변호사 등과 사전 모의 대면을 하고 오는 등 선수들의 전략이 다양해졌다" 고 말했다.

◇ 읍소형〓한화 이상목은 연봉 8천만원을 받던 에이스급 투수였다.

그러나 지난 시즌 부상으로 제대로 출전조차 못했고 당연히 고과도 최하점을 받았다. 구단은 무려 50% 삭감된 4천만원으로 재계약을 하려 했다.

그러자 "이렇게 깎이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 후배들도 나를 따르겠느냐" 는 등 이상목의 애절한 하소연이 이어졌다.

결국 애원 전략은 구단의 마음을 흔들고 25% 삭감에 1승당 7백만원 옵션 계약을 이끌어냈다.

'읍소형' 은 선수뿐 아니라 구단의 작전이기도 하다.

최근 구단 매각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난 시즌 우승팀 현대는 모기업 현대전자의 자금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간곡하게 전달하고 있다.

주전 전원이 1억원대 이상의 연봉을 요구하고 있는 선수들로서도 매몰차게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 배짱형〓두산의 김동주.심정수는 아직 하와이 전지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연봉 협상을 끝내야 전지훈련을 갈 수 있다는 구단의 방침 때문이기도 하지만 둘은 "전지훈련을 가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몫은 찾아야 한다" 며 버티고 있다.

LG의 양준혁은 지난해 연봉 2억원보다 50% 증가한 '3억원' 만을 요구할 뿐 좀처럼 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장에서 연습에 몰두하느라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것도 그의 배짱을 뒷받침해주는 여건이다.

◇ 떠넘기기형〓삼성의 이승엽은 구단에 연봉을 '백지 위임' 했다. 구단의 결정에 순순히 따르겠다는 입장이지만 구단으로서는 자칫 잘못 액수를 책정했다가는 모든 비난을 뒤집어 쓸까봐 오히려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백지 위임은 구단의 책정액보다 대부분 올라가는 경우가 많아 고단위 전략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모 선수는 "라이벌 선수의 연봉 액수를 보고 결정하자" 며 미루기도 한다. 골치 아픈 머리싸움을 하기보다 눈치를 살피다 협상 기한 막판에 가서야 연봉에 사인을 하는 스타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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